영롱한 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산골짝 냇물처럼 잔잔누비 흐르다가 마지막에는 산기슭 뫼울림을 베껴 적으면 그런 것일까 싶도록 예쁘장하다. 아직은 서툴러도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 수준이나마 대견하다. 악기를 다루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되 까다롭고 예민한 플루트를 혼자서 익혔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 왔다.

얼마나 예쁜 소리를 갈망했는지 모른다. 남들이 연주하는 걸 보면 금방 따라 할 것 같더니 쉽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나중에는 멜로디고 선율이고 소리만 났으면 싶었다. 두 번째 옥타브는 소리라도 나는데 고음부터는 묵묵부답이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학원에라도 다닐까 했으나 혼자 힘으로 돌파하겠다는 결심을 번복하기는 싫었다. 하루만 걸러도 뒤숭숭할 만치 연습에 매달렸다. 1년이 지났다. 소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듯했다. “정말 소리가 난 거 맞지?”라고 뇌었다. 고음역을 마스터할 때는 꿈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 하늘의 별을 땄다. 3년쯤 되고 나니 비로소 기초가 다듬어진 것일까.

말이 3년이지 무척 힘들었다. 악보는 자신이 있고 소리는 잘 듣는다고 했건만 한때는 그도 미심쩍었다. 특별한 테크닉은 생각할 수 없이 멜로디를 익히는 데만 주력했다. 늦깎이로 시작해서 더 힘든가 보다고, 악기라도 비싼 걸 사면 괜찮아질까 등등 별의별 추측을 다 했었다. 소리도 소리지만 혼자 힘으로 이루었다는 기쁨에 더욱 설렜다.

언젠가 하루는 연습 중인데 그 날 따라 소리도 예쁘지 않고 가뜩이나 초보자는 짜증만 났다. 날씨까지 찌는 듯 무더웠다. 쉴 겸해서 창문을 열었다. 곧 이어 소나기가 퍼붓더니 뚝 그치고는 무지개가 뜬다. 갑자기 하늘에 눈부신 아치형의 다리가 걸렸다. 지금까지 연습해 왔던 계이름도 일곱 개의 띠처럼 또바기 이어졌다. 플루트 고유의 투명한 음색 하나하나가 진주처럼 물방울처럼 수많은 공깃돌 되어 하늘 징검다리를 건넌다.

무심코 바라보니 초록 물방울이 묻어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일곱 빛깔 무지개는 번지지 않았다. 번지기는커녕 낱낱이 또렷했다. 이슬은 그때까지도 토옥톡 굴러다녔다. 플루트의 운지법 역시 매끄러운 중에도 하나하나는 정확히 짚어나간다. 제가끔 떠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일제히 어우러지던 하모니.

나도 그런 소리였으면 좋겠다. 생각은 간절하지만 일단은 피나는 연습이라야 하겠지? 소질 갖춘 사람이 한 시간이면 나는 세 시간 다섯 시간이다. 감히 그들에 비할까마는 타고난 게 없으니 믿을 것은 연습뿐이다. 처음 배울 때도 그런 식이었으니까. 오래 전 조카딸의 친구가 비제의 미뉴에트를 연주하는 걸 들었다. 해맑은 선율이 너무 너무 좋았다.

나비가 풀밭을 날아다니듯 바람에 꽃들이 낭창낭창 춤을 추는 듯했다. 나도 그렇게 연주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 때로서는 절박했다. 당장에 악기점에 달려가 플루트를 사 왔다. 가능할지는 나중 일이고 우선은 시작이 급했다.

아무리 그래도 몇 군데 알아봐야 했거늘 앞 뒤 가늠이 없었다. 그렇게 산 것 치고는 또 별달리 하자는 없었으나 제법 과감한 기질이었다. 운지법부터 연습했다. 결심과는 달리 무척 어려웠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후 간단한 동요를 연습하면서 소곡집으로 넓혀나갔다. 뒤미처 찬미가의 반주도 무난하게 되었고 명곡도 조심스럽게 도전해 보았다. 난해한 부분도 연습하다 보면 전체적인 리듬이 그려졌다. 아무리 그래도 명곡은 가히 까다롭다 싶지만 기초는 쌓은 폭이고 연습을 계속하면 가능할 것 같다.

플로티스트들의 공연을 보고는 소질인가 했더니 팔이 아프도록 연습이란다. 타고 난 사람들도 허구한 날 연습 끝에 예쁜 음색으로 다듬어진다. 무지개가 폭우 끝에 예쁘게 아로새겨진다면 나도 맹연습 끝에 고운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간혹 자신의 소리에 반할 때도 있으나 진짜 좋은 멜로디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 그것은 즉 천 번 만 번 매만지고 다듬을 때라야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같은 이미지였던 것.

아름다운 소리의 근원은 그렇듯 깊고 오묘했다. 플루트 소리도 오랜 날 과정 끝에 다듬어진다. 연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복식호흡에 따른 운지법이다. 그 외에 비브라토 등도 있지만 그 때는 복식호흡이 관건인 줄 모르고 대단치 않게 여겼다. 우선은 습관이 되지 않았고 뭐 어떻게든 소리만 나면 되지 않겠느냐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속성 특유의 메마른 소리가 나왔던 거다. 차가운 금속 악기 플루트는 뜨거운 입김으로만 감동적인 울림이 된다. 목소리가 좋다고 할 때 그 소리는 저 아래 복부에서 목까지 울려 퍼지는 공명의 효과이다. 플루트 역시 뱃속 깊이 끌어당기는 소리라야 반응을 한다. 간절한 심정으로 매만지고 다룰 때라야 감동적이다. 단순히 소리만 내서는 평범한 소리였을 뿐 음악성을 띤 선율과는 동 떨어진다.

플루트 주자들이 연주에 앞서 새새틈틈 닦아주면서 따뜻한 음색으로 다듬는 것도 음악에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눈부신 울림으로 떠오르는 것 아닐까. 감히 꿈꿀 수 없는 차원이나 내 소리도 그렇게 다듬어지를 꿈꾸며 산다. 뛰어난 연주자들의 노래는 들을수록 감동이지만 정확한 운지법과 지속적인 연습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그 자체가 진정한 미의식일 거다. 혹여 서투를지언정 누구를 막론하고 악기에 대한 열정은 순수했으므로.

플루트는 그렇듯 맑고 화려한 악기였으나 지금도 예쁜 소리는 까마득하다. 쇼팽의 플루트 변주곡 등은 너무도 어렵지만 연습만이 비장의 카드이다. 복식호흡 또한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훈련을 쌓으리라 다짐해 본다. 한때는 등한시해 왔지만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동안 과로하면서 잔병치레도 많았다. 한계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전공자들도 마魔의 코스가 있었을 거라고 보면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가끔 어떻게 혼자 배울 수 있었느냐는 말을 듣는데 스스로도 자랑스럽고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라는 소망을 갖는다.

플루트는 나의 동반자이다. 아직은 서투르고 뒤늦게 시작해서 무에 잘할까마는 매일 매일 연습해도 깨가 쏟아진다. 예민한 악기라는 건 더넘스러워도 푹 빠지도록 좋아하는 게 있으니 바랄 게 없다. 관현악에서도 화음을 넣듯이 청아한 선율은 영락없이 플루트 소리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잘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은 이제 아웃이다. 언젠가 들을 만해질 때까지 갈고 다듬는 행복이야말로 천금을 줘도 바꾸고 싶지 않다.

 

/ 수필가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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