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고 돌아와 네 시선이 마지막 머물렀을 방안을 들여다본다. 고요가 팔을 벌리고 방안에 가득 내려와 있다. 방문을 열고 납작하게 내려앉은 고요의 몸통을 비집고 들어간다. 방안은 온통 너의 파편들로 가득하다. 이리저리 널린 과자 봉지, 볼펜, 수첩, 양말 등 너의 흔적들을 정리한다. 폭격이 한차례 지나간 듯한 방안을 수습하고 앉아 무심히 창밖을 본다. 너의 얼굴이 달 속에 환하다.

고속도로를 접어들자 길가 양옆에 시끌벅적 꽃들이 피어있었지. 꽃들을 보며 올해 벚꽃 봤냐고 물었을 때 너는 무심천에 갔었노라 이야기 했지. 거기서 벚꽃을 봤다고. 하얗게 허공을 찌르고 있는 조팝꽃을 보며 이름을 말해주자 너는 이름이 재미있다고 웃었지. 산수유를 보며 생강나무와 산수유의 차이점을 알려주니 너는 웃으며 말했지 생강나무에 생강이 달리냐고. 난 대답했지. 별꽃에는 별이 안 뜨는 거라고. 그리고 우린 하얀 이를 드러냈지.

복귀 직전, 부대 앞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린 벚꽃 아래 사진을 찍었지. 평소에 사진 찍기 싫어하는 네가 그저 찍히는 대로 있는 것이 고맙더라. 진달래도 흐드러지게 산허리를 물들이고 있고, 개나리도 노랗게 미소 짓고, 길가에는 제비꽃도 있었지. 하늘빛을 그대로 닮아 있는 봄까치꽃도 바람결에 손을 흔들고 있었어. 마치 너의 복귀를 아쉬워하는 듯.

강원도라 그런지 아직은 저녁바람이 뾰족하게 온몸을 찌르더라. 널 태우러 오는 부대차를 혹시 놓칠세라 십분 전부터 탑승 장소에서 기다렸는데, 차는 십 분이나 지나서 오더라. 차갑게 몸을 후려치는 바람 속에서 너는 꼼작도 안하고 있었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고 하자 군기가 바짝 든 폼으로 안된다했지. 그럼 팔짱이라도 끼라고 하자 그것도 안되는 거라했지. 그래서 난 네 손을 잡아줬지. 넌 그냥 손을 맡기더라. 듬직하고 튼튼한 청년의 손이 한 웅큼 잡혔지. 순간, 내 손을 놓지 않으려 울먹이던 그 날의 작은 손이 바람처럼 휙 머릿속으로 불어오더라.

네가 초등하교 때였지. 나는 대학원공부를 한다고 방학 때면 너를 청학동에 보냈지. 가기 싫다는 너를 억지로 산골에 보낸 거지. 계절학기 공부를 하는 동안 너를 봐줄 사람이 없었던 거야. 그곳에서 너는 방학동안 엄마와 떨어져 훈장님과 생활을 했지. 지리산 청학동 서당에 어린 너를 놓고 돌아올 때,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던 너의 작은 손. 그렁그렁한 눈매의 가녀린 아이. 그 때를 생각하면 나는 미안타. 자꾸만 미안타.

어둠을 밟고 돌아오는 고속 도로. 몸은 피곤했지만 너와 긴 시간을 해서 마음은 부잣집 곳간 같았지. 네 생각을 하며 차를 모는데, 아는 언니가 전활 걸어왔어. 왕복 8시간을 부대에 데려다 주고 가는 길이라 하자 그 언니는 혀를 차더라. 힘들지만 아들이라 다녀오는 길이라고, 다른 이가 억만금을 주고 오라해도 다시 가지 않을 길이라고 되받았지. 오죽하면 천륜이라 하겠어? 라고 그녀가 말했지. 그래 우리는 천륜이지. 하늘의 인연으로 정해져 있는 관계.

네 덕에 오늘 꽃구경 실컷 했다. 올 봄엔 눈이 온갖 호사를 누렸다. 너 생각해 본적 있니? 꽃은 상처라는 걸. 아픔의 상처가 여물고 여물어 꽃이 된다는 걸. 너를 보면 늘 저릿하다. 네가 어릴 적, 내 욕심으로 인해 네게 준 상처들이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아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돌아보면 그 시절은 왜 그리 나만 생각 했나 모르겠다. 그래서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 특히 너에게 방학동안 따듯하게 밥 한 번 제대로 못해준 것이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차갑게 가슴 한구석에 아직도 걸려 있다.

네 방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보름달이 상감된 듯 박혀 있고, 그 달 속에 누군가 불을 환하게 켜놓았구나. 환한 달빛을 아래 벚꽃이 하얗게 웃고 있다. 네 아픈 상처들이 잘 아물어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날이 오길...... 그리고 조국을 지키는 늠름한 청년이 되길.
보고 싶다. 아들.


/ 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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