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의 꿈을 키우며 전국각지에서 만나 한 클래스에서 수학하던 친구들이 매년 모임을 열어오고 있다. 올해는 내 고장 충북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교통의 중심지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왕이면 삶과 문화의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캐치프레이즈부터 선보였다.

2019 우리의 만남은 생거진천(生居鎭川)에서!

초정약수(椒井藥水) 세계3대 탄산광천수 온천욕!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곳 운보의집!

천년의 숨결 진천 농다리! 초평호 한반도지형 비전을 품다.

동선을 고려하여 1박2일의 여정으로 일정을 알려주니 모두가 찬성하였다.

다름 아닌 26년 전 광주대학교 건축공학과(光建會) 학우들이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영원 청춘의 만남으로 모두가 고대하는 상봉의 날이다. 당시 학우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출석하는 주말학기로 5년간 대학교를 다녔다. 고교졸업에서 대학교 학사모를 쓰게 된 감격은 지금까지 저마다의 가슴에 훈장이라 한다.

멀리 전남 영광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학우들과 반가움에 얼싸안았다. 이윽고 초평붕어마을에서 붕어찜으로 늦은 오찬을 했다. 이구동성 별식이라며 좋아한다. 우리는 먼저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둘레길 트레킹에 나섰다. 초평면이 고향인 나에게 유년시절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이드를 자처하며 유인물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안내했다. 서로 손잡고 천년의 숨결 농다리를 건널 제 청운의 꿈을 펼치던 그날이 무지개처럼 피어올랐다. 초평호의 한반도 지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오를 때는 숨이 턱에 차지만 더욱 힘이 솟는다. 초평호수에 의젓한 한반도의 모습은 바라볼수록 신비스럽다. 그야말로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고 내 고향을 모두 부러워한다.

땅거미가 질 무렵 숙소에 들어 우리는 땀에 젖은 속옷을 훌훌 벗고 세종대왕께서 치료하던 곳, 초정약수에 몸을 담갔다. 하루의 피로가 봄눈 녹듯 사르르 녹는다. 초정약수는 세계 3대 광천 중의 하나로 6백여 년 전에 발견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그 유래가 밝혀져 있다. 매콤하고 차가운 천연 탄산수가 용출하는 영천으로 일찍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더욱이 세종대왕이 행차하여 60일간 이곳에 머무르며 안질을 치료한 유서 깊은 약수터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하루 약 8,500ℓ 정도 솟아나는 무균의 단순 탄산천으로,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노쇠한 세포를 자극하여 몸 안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혈압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라듐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이는 눈병 등 안질환뿐만 아니라 피부질환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분 때문에 레몬 향기와 함께 후추처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하며, 초정(椒井)이란 지명도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다음 날에는 운보의 집으로 향했다. 운보 김기창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다. 작품 활동 초기 우리 회화에 짙게 배어있던 일본식 화풍을 벗어나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하였다. 인생말년 무위자연의 순수를 표방한 '바보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통해 '한국의 피카소'로 까지 극찬을 받았던'국민화가'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산자락 99,000여 제곱미터에 문화예술 광장을 조성하였다. 지역사회의 명소로 알려진 "운보의 집"에는 솟을 대문을 지나 정원과 2개의 중문을 통과하면 우리고유의 전통양식인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연못의 비단잉어가 잘 조화되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운보의 집에는 운보미술관을 비롯하여 수석공원, 조각공원, 도자기 공방, 연못과 정원, 찻집, 운보의 묘 등이 조성되어 있다.

운보의 삶과 예술에는 어머니 외에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당시 촉망받던 여성화가 우향 박래현이다. 박 화백과의 결혼은 운보의 삶과 예술에 큰 분기점이 된다. 김기창과 박래현은 194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던 화가 부부이다. 이들은 30년의 결혼생활 동안 17번의 전시회를 열었으니 그 깊은 예술혼에 머리가 숙여진다. 화가로의 동반자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아내는 1976년 먼저 타계하였고 2001년 88세의 나이로 운보도 타계했지만, 우리는 그의 자취를 일상 속에 품으며 살고 있다. 1만원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 영정이 바로 운보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 일부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운보의 집’은 한국의 100대 정원 중 한 곳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운보 화백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듯하다.

부채살로 퍼지는 처마와 대문위에 나 있는 창살, 문을 잇는 돌계단, 부드러운 곡선이 흐르는 지붕은 한옥이 지닌 멋스러움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

안채 마당을 비롯하여 '운보의 집'곳곳에는 세계 최대의 명품 분재들이 전시되어 분재예술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엄선된 분재들은 한옥과 정원, 돌담장과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운보의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건축의 아름다움에 취한 학우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함께한 아내들도 화답하듯 세심하게 이모저모를 살펴보니 그 발걸음이 더없이 곱다.
영국의 시인 키츠는'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했다. 미술에 조예가 적은 친구들도 거장의 숨결에 빠져 모두 깊은 감동을 안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제 예술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라도 큰 수확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키워온 대학 청년의 꿈을 광주대학교와 함께’ 26년을 이어온 우리의 만남이 한층 빛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충북에서는 경부축에 치중된 국토의 불균형 개발과 심화된 지역적 격차를 벌렸음이 사실이다. 앞으로 이를 해소하고 우리 충북이 중심이 되어 강호축의 개발을 이끌 것이라는 도백의 리더십을 밝히니 친구들이 힘찬 박수로 응원을 해준다.

국토의 균형발전으로 남북 평화를 구축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실크레일 연결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의 만남은 학우들의 고향을 따라 순방한다. 이렇듯 끝의 만남까지도 충북으로 다시 한 번 초청하고 싶은 바람이다. 학우들이 피워온 끈끈한 우정의 꽃도 시들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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