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진달래와 함께 온다. 산야에 피어있는 진달래를 가까이 하지 않고는 한번뿐인 봄을 차마 보낼 수 없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 참꽃을 만나러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에 간 것은 큰 행운이다. 올 2월 정년을 맞은 교육대학교 14기 동기들 열 한명이 함께 하니 마치 대학 입학 후 설렘과 꿈을 안고 기다리던 MT의 그날이었다. 테마기차여행으로 청주역에서 출발 여수엑스포 역까지 전세 기차를 타고 가니 색다른 경험이라 궁금한 것도 많았다. 달리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역에 내리니 11대 버스가 대기하여 400명 넘는 탐방객을 태우고 영취산으로 줄지어 달린다. 달력에서나 보던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를 실제로 접하니 기대이상의 어여쁨과 멋스러운 장관에 가슴이 뛰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홀로 핀 진달래도 곱지만 한데 어울려 핀 진달래 붉은 언덕은 마음의 파도를 소월에게로 잇는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그걸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니 이별의 아픔을 진달래 물결을 감싸 안으며 위로 받은 듯하다.

함께 간 동기들도 하나같이 진달래에 반하여 넋을 잃고 소녀들처럼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침 동기 중에 사진작가가 있어 멋진 영취산 진달래를 이모저모 담아올 수 있어 행복했다. 기차여행에다 바닷가에 들르는 순서도 마련하여 여수어시장과 갈매기 나는 바다를 둘러보고 건어물과 갓김치를 사는 여인들도 많았다. 다시 역에 이르니 아침의 기차가 우리를 엄숙히 기다리고 있다. 올 때 앉았던 아침의 좌석에 그대로 앉는다. 여수를 뒤로하며 차창 밖을 보니 어느 새 저녁노을이 깃들어 곱다. 저녁은 다양한 반찬과 국이 곁들인 도시락을 준다. 맛을 음미하며 도란도란 얘기하며 기차소리와 달리는 순간순간마다 봄추억이다. 여인들이 밥 한 끼 안하고 해준 밥 먹고 기차를 전세 내어 달리니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 아닌가!

가장 감동은 밤이 깊어가자 작은 컵초를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이다. 호차별 도우미 청년이 하나하나 불을 붙여주고 잠시 후 기차내 전등을 일제히 꺼버릴예정이란다. 저마다 촛불을 들고 안내 멘트에 따라 사랑과 감사의 시간을 열어보는 따듯한 기획이다. 신호에 의해 일제히 소등하니 암흑 천지에 차창 밖으로 마을들 불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동화 속 세상이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마침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오늘 기차를 탄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받는 순간이다. 나는 그 순간 웬일인지 산골에 사는 소년이 봄이 되면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 교실 곳곳에 꽂아놓아 아이들과 나를 분홍 꿈으로 이끌던 교사시절이 떠올랐다. 오직 학교에 와서 선생님한테만 모든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던 그 시절 나는 교실의 여왕이었고 학부모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맘껏 받았다. 꿈처럼

그 시절 내가 담임한 아이들은 산야에 핀 진달래처럼 곱고 산바람과 친하며 친구들과 선생님을 깊게 신뢰하였다. 그 의리있고 순박했던 나의 제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우리의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되어 있다.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다가 꽃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진달래는 꽃을 따서 생으로 먹기도, 화전을 붙이기도, 술을 담그기도 하여 버릴 게 하나 없는데, 제자들도 어디서나 참꽃나무의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 이겨내고 봄이면 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운 참꽃처럼 피고 또 피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죽어 다시 꽃으로 살 수 있다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나는 진달래꽃으로 태어났으면 한다. 바위틈에 다소곳 피어 새 봄이 오면 겨우내 꾼 꿈을 분홍 꽃으로 피울 것이다. 하늘 별님과 푸른 바다 바람 이야기 들으며, 멀어져가는 종달새도 가까이 부르고 싶다. 그리운 아이들 어디쯤 피어있나? 그들이 내 맘의 진달래꽃임을 아이들은 알고나 있으려는지.

 

/ 박종순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장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