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인가 보다. 아파트 정원 화단에 있는 이름 모를 꽃나무에 하얀빛, 분홍빛 고운 꽃망울이 맺혔는가 싶더니, 어느 새 따스한 햇살 한 줌, 바람 한 줄기 머금고 탐스러운 꽃이 활짝 피었다. 이른 봄, 온 몸으로 꽃을 피워내며 봄소식을 알린 이 꽃나무 덕분에 행복감을 느끼던 중, 오늘은 또 다른 반가운 봄 손님이 찾아왔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1층 정원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민들레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예쁜 민들레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민들레꽃의 힘이 느껴지는 동화와 소설이 떠올랐다. 권정생 동화작가의 ‘강아지똥’(길벗어린이 펴냄)과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이 그 것이다.

‘강아지똥’에서는 조그만 강아지, 돌이네 흰둥이가 눈 강아지똥이 주인공이다. 강아지똥은 날아가던 참새와 어미닭, 병아리들에게 더럽고 쓸모없다고 놀림을 당한다. 외롭고 슬픔에 젖은 강아지똥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 것은 바로 민들레이다. 민들레는 강아지똥에게 ‘네가 거름이 되어줘야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쁘고 벅찼을까? 그리고는 비오는 날,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고 잘디잘게 부서져 예쁜 민들레꽃을 피워낸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강아지똥’ 중에서)

이 동화를 읽으면 “세상엔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정승각 화가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림이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단편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에서도 등장인물 ‘나’가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것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었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오해하여 죽을 생각으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시멘트 바닥의 한 줌 흙 속에서도 생명을 피워낸 민들레꽃을 보고 ‘나’는 부끄러움을 느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옥상의 시멘트 바닥이 조금 파인 곳에 한 숟갈도 안 되게 흙이 조금 모여 있었습니다. (중략) 싹이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기에는 너무 적은 흙이어서 잎은 시들시들하고 꽃은 작은 단추만 했습니다. 그러나 흙을 찾아 공중을 날던 수많은 민들레 씨앗 중에서 그래도 뿌리내릴 수 있는 한 줌의 흙을 만난 게 고맙다는 듯이 꽃은 샛노랗게 피어서 달빛 속에서 곱게 웃고 있었습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를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것이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옥상의 민들레꽃’ 중에서.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대표소설37’에 수록)

민들레꽃처럼 봄이면 들길이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들,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하고 은은한, 들꽃의 고운 매력을 느껴보아야겠다. 창비에서 펴낸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 시’에 실린 이응인 시인의 시 ‘민들레’를 감상해 본다.

민들레

이응인

맑은 날

초록 둑길에

뉘 집 아이 놀러 나와

노란 발자국

콕 콕 콕

찍었을까

 

/연인형. 프리랜서 독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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