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일곱 때의 일이다. 저녁에 시작했던 기타연습은 매일 동틀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지나가듯 한 얘기가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기타 배운다고 폼 잡고 C코드만 주구장창 치는 애들 너무 듣기 싫어!” 그렇다. 기타를 잘 연주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C코드만 연주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폼만 잡기보다 내실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고, 시작만 하고 마무리도 못하는 사람,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기타를 통해 끈기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 이후로 매시간, 매순간이 연습의 연속이었다. TV, 컴퓨터, 핸드폰이나 영화, 공연, 독서 어느 하나 흥미가 없었다. 그 시절은 오직 기타만이 위로와 재미를 주었다. 모르는 코드, 어려운 코드를 섭렵하고 다양한 주법이나 스타일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3일 만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할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기타를 배우면서 겪게 되는 최대의 고비 ‘F코드’를 잡게 되었다. 이주일 만에 교재의 대부분의 곡들을 마스터했고 한 달 만에 내게 기타를 가르쳐줬던 선생님처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나와 함께 시작했던 사람 중에 70%가 이미 그만두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불과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타를 배우고 나서 달라진 게 많다. 먼저 여행을 가거나 모임에서 노래 부를 일이 많아졌다. 지인들은 나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혼자 여행간 제주도의 바닷가에서도 나는 노래를 했다. 시원한 바람과 연주가 더해지니 내 삶도 빛나는 것 같았다. 취미나 특기를 물어도 어렵게 얘기하지 않아도 됐다. 기타라고 얘기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혼자서도 잘 놀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타를 가만히 안고 있는 모습은 연인과의 포옹과 닮았다. 부드럽게 쓸고 두드리면 아름다운 소리가 공명한다.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기타를 배우면서 자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났다. 물집은 굳은살이 되었고 피가 나서 아픈 시기만 지나면 실력은 좋아졌다. 손 끝의 예민한 감각들이 되살아나자 덩달아 업무능력이나 총명함도 살아나는 듯 했다.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타연습에 소홀하다. 손끝에 있던 굳은살도 대부분 사라졌다.

2019년 3월이 시작됐다. 미루었거나 시작하지 못했고, 불가능하다고 여겨 주저하는 모든 것들을 떠올려본다. 상처가 나서 굳은살이 생겨도 두렵지 않은 마음으로,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닿지 못하더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 충북SNS서포터즈 이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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