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봄 속으로 들어간다. 칼칼한 바람이 살갗을 찌른다. 링거줄처럼 드리워진 볕을 받으며 아직은 뾰족한 바람 속을 걷는다. 동구나무를 지나 으름나무가 몸을 드러내고 서 있는 중간 마을을 스친다. 어린 시절 으름을 따서 흐뭇하게 먹던 시간들이 기억 속으로 푸드득 날아온다. 지난해에 달맞이꽃이 노랗게 웃던 둑을 건너, 칡꽃이 붉은 향기를 피워내던 언덕을 지나 윗마을에 이른다. 지워진 계절을 따라 산책 하는 길, 희미해졌던 시간의 그림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길가의 냉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겨울의 모진 바람을 견뎌낸 후 초록으로 생명을 피어 올리고 있다.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온 모습이 대견하다. 가만히 키를 낮추어 본다. 몸을 낮추니 많은 것이 보인다.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장미는 로제트 식물이라고 알려주자 “로젠택배?” 라고 묻던 동생의 장난기 어린 말이 귓가에 떠다닌다. 혼자 살포시 웃고 만다.

바구니 가득 진한 봄 향기를 담는다.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잎을 손으로 살짝 든 후 호미로 땅을 판다. 주변의 흙을 좀 넓게 판 다음 냉이를 한 움큼 잡아 뽑는다. 하얗고 긴 뿌리가 쑤욱 나올 때의 그 쾌감이라니. 걸을 땐 보이지 않았던 냉이가 고개 숙여 캐다보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냉이의 은근한 유혹에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도시의 마트에도 냉이는 지천이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손쉽게 식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냉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마트에서 산 하우스 재배 냉이는 향기가 없다. 몸집은 야생 냉이보다 커서 먹을 것이 많아 보이지만 실은 맹탕이다. 그러나 들에서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낸 후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에는 진한 향기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아픈 시간을 견뎌낸 사람은 싱겁지 않다. 삶의 눈물이라는 감미료를 온 몸에 품고 있어서 진한 맛을 낸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는 내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고무줄도 같이하고, 봄이면 나물도 캐러 다니고, 시험기간이면 공부도 같이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술을 달고 사셨고 어머니는 남매를 공부시키느라 파출부 일을 했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늦게 집에 오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했었다. 술에 취하면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아버지를 피해서, 우리 집으로 동생을 데리고 피신을 오기도 했었다.

그해 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다리가 부러졌었다. 그래서 한 달이 넘게 깁스를 해야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학교에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업고 매일같이 학교엘 갔다. 20분도 훨씬 넘는 등굣길 이었다. 나보다 덩치가 컸다고는 하지만, 어린 아이가 누군가를 업고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참을 업고 가다가 힘이 부치면, 나를 길에 내려놓고 헉헉거리던 그녀. 그녀의 숨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서울의 구로공단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각자 사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하고 지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지금쯤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냉이 된장국을 끓여 상을 차린다. 온 집안에 냉이 향이 가득 찬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을 그녀를 떠올려 본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을 것 같다. 의지가 강한 그녀 였으니 독학을 하여 학업을 마쳤을 것 같다. 어쩌면 간호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내겐 너무 진한 향기로 남아있는 그녀. 그녀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향기를 나누어주며 그 향기에 취해 즐거운 미소 가득한 생활을 하고 있기를 기도한다. 창가에 비치는 흰 구름 위에 그녀의 얼굴이 살포시 웃고 있다.

 

김나비 /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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