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이 읍 단위에서 시로 승격되는 해에 제천교육지원청으로 발령을 받아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사이 제천에서 젊음과 배움으로 여러 추억이 많았지만 하나뿐인 아들도 그곳에서 얻었다. 벌써 39년 전의 일이지만 그 쪽을 지날 때마다 제천을 잊은 적이 없다. 제천은 월악산, 소백산, 치악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지역이다. 의림지, 박달재, 월악산, 청풍호반 등 제천 10경을 보려고 사시사철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과거엔 석탄을 저장하고 전국으로 분배, 수송하는 교통 요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청풍휴양단지, 리솜 포레스트, 제천 웰빙 휴양타운 등 친환경 체류형 도시로 눈부시게 변모하고 있다.

마침 지난 달 ‘의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는 색다른 기사를 접하고 오랜만에 기차를 이용하여 제천에 가보기로 하였다. 아름다운학교운동제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는 L교수의 초청도 있어 그 설레임이 철길을 따라 달린다. 향수 짙은 제천역에 내리니 역사 공사로 주변은 어수선하지만 L교수가 반가운 얼굴로 마중을 나와 따듯이 손을 잡는다.

누구든지 제천하면 의림지를 떠올린다. 제천 십경 중 제 1경이니 그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박물관을 세워 정비 보존함이 마땅하다 싶어 흐뭇함과 자랑스러움을 감출 길 없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던 시대에 산간지역인 제천에서 제천평야의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던 의림지의 위상은 제천의 옛 지명인 내토(奈吐)와 충청·경기도를 일컫는 호서(湖西)라는 별칭이 모두 의림지에서 유래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 그리고 수백 년을 자라온 노송들이 독야청정(獨也靑靑) 군락을 이루고 수양버들과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호수와 송림을 벗 삼아 걸으며 단상에 잠길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도 의림지의 매력이다.

역사 안에 마련된 카페에서 도라지차를 음미하며 서둘러 의림지로 달려갔다. 모던한 현대 건축물이 눈에 우뚝하다. 바로 ‘의림지역사박물관’이다. 행운이랄까 '제1회 제천얼음축제'가 열리고 있어 의림지가 완벽한 겨울왕국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수변공원에 펼쳐지는 얼음, 눈 조형물과 공어낚시, 얼음성, 순주섬 등과 함께 제천만의 특별한 겨울을 느끼는 듯 했다.

의림지 안의 순주섬을 모티브로 한 아이스힐링정원은 얼음 위를 걸으며 마음 쉼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순주섬은 미지의 섬, 신비의 섬으로 불릴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얼음성에서 순주섬까지 220m를 얼음부표 다리로 연결해 놓아 의림지 물위를 걸어본 것은 색다르고 귀한 추억이 되었다.

의림지를 옆에 거느리고 편안하게 자리한 '의림지역사박물관'은 의림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함’으로써 의림지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하는 문화학습공간이자 랜드마크로 기능한다. 이뿐만 아니라 체험 및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박물관은 전시유물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의림지를 주제로 한 상설 전시해설, 제천 문화재를 주제로 한 ‘겨울방학 어린이 가족 박물관 체험교실’, 전시실 스탬프 체험 등이 있다.

의림지는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현재 의림지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과제는 의림지 자체가 삼한시대에 축조된 문화재로서 시설의 신, 증축과 보수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림지 인접 500미터 구간에는 개발이 어렵고, 의림지가 제천시에 위치한 저수지이자 문화재라는 특성 때문에 제천시, 농업기반공사, 충청북도문화재관리위원회 등 관리 주체가 분산돼 있어 통합 관리나 지도단속에도 어려움이 큰 실정이다. 앞으로 관계부서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지혜를 모아 긴밀히 대처해야 할 일이다.

모처럼 L교수와 함께한 제천 의림지 탐방은 역사의 숨결을 살려 문화 다듬기로 일상에 힘을 얻는 힐링이었고 행복한 인문학적 고찰이었다. 유네스코 등재를 소망하며 나의 관심은 의림지의 눈동자라 할 수 있는 순주섬에 깃든다. 어떻게 호수 한 가운데 섬이 자리할까. 여러 학설이 많은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설에 근거하여 네모난 의림지에 동그란 순주섬을 넣어서 음양의 조화를 맞혔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제천에서 낳은 아들이 어느덧 성장하여 한국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며 자신의 길을 자랑스럽게 개척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아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의림지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참 삶의 길과 인생의 멋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도 순주섬의 나무들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초록을 지키며, 이 땅의 새 역사를 푸르게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정관영 / 공학박사. 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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