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가 얼추 물렀다. 조반을 먹기 전 끓기 시작한 게 두 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둔 채 좀 더 두기로 했다. 김이 잔뜩 서리고 훈훈한 기운이 돈다. 깨끗이 헹궈 국도 끓이고 나물로도 먹으면 한동안은 반찬 걱정 없다. 이맘때 사랑채 가마솥 안에서는 쇠죽 쑤는 연기가 자오록했었지. 불현듯 시래기 삶는 모습에 얼비치던 고향의 겨울이 그립다.

벼 타작이 끝나면 바깥마당에 짚 낟가리가 쌓인다. 추수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아버지는 머슴을 시켜서 짚을 썰도록 했다. 멍석을 깔고 작두를 설치한 뒤 마당 가득 짚북데기를 부려 놓았다. 한 사람은 작두를 밟고 또 한 사람은 짚을 매긴다. 한 번 썰고 그리고는 다시 볏짚을 넣고 그럴 때마다 짚 무더기는 투두둑 잘려나갔다.

리듬이나 맞추듯 착착착 어우러지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손을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불안한 마음에 금방 자리를 뜨지만 궁금해서 다시 가 보면 짚은 그 새 작은 산처럼 쌓였다. 온종일 썰어 담고는 한 삼태기씩 퍼서 쇠죽을 쑤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콩깍지를 태워 쑤기도 한다. 갑자기 콩이 튀기도 하는데 먹고 싶어 딴에는 기다리지만 설익은 콩은 비린내만 풍겼다. 어린 소견에도 잿불에 파묻으면 될 것 같았다. 콩깍지에는 더러 알갱이가 붙어 있기도 했다. 불이 꼬다케 타기 시작하면 머슴은 잠깐 자리를 뜨게 되고 기회다 싶어 묻어 두지만 부랴부랴 꺼내는데도 뒤집을 새 없이 타버린다. 약이 오르고 짜증이 난다. 머슴 보고 꺼내 달래도 되는데 퉁명스러워서 말 붙이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자칫 데거나 할 경우 아버지께 꾸지람 들을 테니 아궁이 앞에 얼씬만 해도 질색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남은 불에 땅콩과 감자 등속을 구우셨다. 그런데도 괜한 눈치를 보면서 설익은 콩을 먹고 싶어 했다. 어처구니가 없고 시래기를 삶을 때마다 쇠죽 쑤는 정경이 스쳐간 게 아닌지. 볏짚 또한 시래기처럼 마른 것을 푹푹 삶아대는 식이었다. 초겨울이면 시래기와 소여물거리를 준비했다. 김장이 끝나면 무청을 엮어 시렁에 매달았다. 쇠죽 쑤는 사랑채 보꾹에는 시래기 갓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그늘에서 시나브로 마르던 무청이 한겨울에는 부스러지도록 마른다. 삶기 전에 물을 살짝 뿌리는 것은 부드럽게 만드는 구실도 되지만 자칫하면 건드릴 새 없이 망가진다. 그것을 떼어 무르도록 삶으려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소가 먹을 여물거리는 시래기를 엮어 달고 난 뒤에 준비한다. 추워지면 여름내 풀 뜯던 소는 먹을 게 궁해지고 볏짚을 썰어 여물을 만들게 된다. 농한기와 함께 우리 집 암소 누렁이의 배부른 겨울나기가 시작되곤 했다. 우리 집에는 머슴이 있었지만 동무들은 여물 써는 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놀지도 못했다. 한창 재미있게 놀다 보면 작두질해야 된다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데려 가곤 했다. 어른들은 작두를 타고 앉아 볏짚을 먹이고 작두질은 그 애들 몫이었다. 체구가 작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아침 저녁 끓이고는 여름내 일만 해 온 소들에게 먹인다. 일도 일이지만 한 지붕 밑에 산다고 알뜰히 챙겨 주던 모습이 정겹다.

겨울이면 누렁이의 콧김도 한 자는 넘게 서린다. 한 해 농사가 끝나면 줄잡아 석 달 남짓은 휴식에 들어간다. 겨울나기 장비라야 두툼하게 깔아둔 볏짚과 등에 걸친 덕석 한 장 뿐이었으나 아침저녁으로는 뜨거운 여물을 먹을 테니 그만해도 배부르고 호사스럽다. 저녁이면 머슴 아저씨는 사랑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잘게 썬 볏짚에 어느 날은 콩깍지가 들어가고 후할 때는 수북하게 담은 메주 콩 한 바가지도 추가된다. 그걸 보면 여름내 힘들기는 했어도 보양식으로는 충분하겠지 싶을 정도였다.

김이 오르다 보면 쇠죽 끓는 냄새가 동(動)한다. 깜깜해지도록 푹 삶은 뒤 한 김 나간 여물을 들통에 내 가면 누렁이 암소는 좋다고 법석이다. 구유에 쏟을 때마다 미처 식지도 않은 여물을 먹고는 뜨겁다고 푸푸거리던 암소와 코뚜레도 꿰지 않은 어린 송아지가 지금도 선하다.

나무로 만든 여물통 구유에서는 추울수록 김이 자오록하고 삽시간에 마당으로 흩어진다. 한참 보고 있으면 암탉까지 겅중겅중 바깥마당을 뛰어다녔다. 날씨가 춥다고 등짝에 덮어 준 덕석은 생철 지붕의 함박눈만치나 두툼했건만, 감나무 밑에서는 삽살개란 녀석이 뜨악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여차하면 짖기라도 할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운 채……

쇠죽과 시래기는 똑같이 오래 삶는다. 겨우내 마른 것을 갑자기 뜨거운 물에 넣으면 오히려 뻣뻣해진다. 불을 지피기 전에 미리 축여 두는 이유다. 특별히 쇠죽은 한참 불린 뒤 삶아야 부드럽다. 소는 어지간히 무른 걸 먹고도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이다. 가뜩이나 이가 약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들여 쑨 보람도 없이 된다. 다 끓인 뒤에도 얼마 동안 그냥 두면서 먹기 좋게 만드는 쇠죽과 오랜 시간 불려 삶은 뒤에도 금방 헹구지 않고 한참을 담가 두곤 했던 시래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따슨 풍경이었다.

대 여섯 번 정도 삶아 먹다 보면 어느 새 해동이 되고 겨울도 저만치 물러났다. 연년이 추워질 때는 그에 묻어나는 추억이 까닭 모르게 그립고 이따금 멀어진 잿빛 향수가 엇갈린다. 고향의 겨울은 쇠죽을 쑤고 시래기 삶는 풍경에 묻어 나온다는 생각이. 냄새는 유달리 퀴퀴하지만 그래서 더 절실한 느낌이라는 것. 순수한 토박이 풍경으로 또 외양간 소가 울어대는 토담집과 흙벽에 걸려 있던 시래기보다 더 한 것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눈 감으면 쇠죽을 끓이던 사랑채 아궁이와 그을음 덕지덕지한 흙벽에 달려 있던 시래기 갓이 떠오른다. 삶을 때마다 진동하던 쇠죽과 시래기 특유의 냄새도 그립다. 볏짚을 태우면서 하얗게 벌어지던 튀밥 냄새도 같고 어느 때는 메주 쑤는 냄새 비슷했는데 글쎄, 지금도 쇠죽 쑤는 집이 있을까. 건강식으로 알려진 시래기는 나부터도 열심히 말리고 있으나 소에게 여물 주는 집은 거의 없을 듯하다.

볏짚은 흔해도 썰어서 간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름조차 투박하고 걸쭉한 시래기니 쇠죽 등을 생각하면 자못 향수적인데 오래 전 기억일 뿐이다. 솥에 삶기도 번거롭고 정성스럽게 끓인들 사료에 길들여진 소가 먹기나 할지도 미심쩍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인스턴트식품 대신 만들기 힘든 고추장 된장 시래기를 권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 수필가 이정희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