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고 싶거나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이 문득 그리울 때면 기차를 탄다. 부모를 떠나 청주에 있는 대학을 다닐 때부터 오늘날까지 충북선 열차는 나의 사랑과 발자취를 싣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버스나 승용차가 따를 수 없는 길고 긴 기차는 달리는 형세도 우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차창 밖 경치가 넓게 보여 평화 속에 떠있는 새가 된 느낌을 얻는다.

지금 제천으로 가는 3호차에 앉아 있다. 마을 어귀와 언덕에 서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이 하필 그 나무되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숙명적인 나무의 선택일까? 비바람 받아내고 사람들이 죽어 떠날지라도 그곳에서 이사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의연하다. 주덕을 지나며 산언덕 비탈마다 줄지어 선 과수나무가 시선을 잡는다. 어찌 과일나무로 태어나 제 맘대로 가지를 벋지도 못하고 오로지 많은 과일을 달리게 하려는 사람으로 인해 나무는 아파 보였다, 볼 때마다 가슴이 편치 않았다. 말없는 나무들에게 내 작은 위로를 창밖으로나마 건네며 자식들 때문에 허리 굽고 팔다리가 쇠약해진 어머니도 어쩌면 한그루 과수나무처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라는 가여운 날들이 스쳐 지나고 있다.

두 달 여 전부터 어머니의 기억력이 갑자기 떨어져 날짜 가는 걸 모르시고 주일도 아닌데 교회에 가시어 목사님이 모시고 오시기도 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신경정신과에 가보았다. 계절을 묻는 의사에게 가을이라 답하시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안는다. 치매 초기 증상이라 한다. 약 처방보다도 가족들과 많은 대화가 증세를 늦춘다는 의사의 조언에 방학을 맞은 여동생들이 어머니를 제천으로 모셔갔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몰라보시는 건 아닐까?’ 그렇게 팔팔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그리 되시니 근자엔 잠을 제대로 이룰 수도 없었다.

여동생이 어머니 해드릴 반찬을 사고 도착 시간에 맞추어 마중을 나와 있다. 엄마가 다행히 밥을 잘 드시고 정신도 맑아 보인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어머니의 거동을 조심스레 살피며 저녁을 먹고 동생내외들과 육십갑자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키워주신 여동생의 딸이 돼지띠여서인지 잠자코 계시던 어머니가 끼어든다. 아버지가 학교에 교감으로 근무하실 때 소사아저씨가 간이우리를 지어주어서 돼지를 키우셨다는 것이다. 나도 모른척하며 어머니 이야기에 흥을 넣어드리니 생생하게 기억하시며 신이 나시는 듯하다.

엄마는 장날에 맞추어 새끼돼지 한 마리를 사서 머리에 이고 들고 오는데 박스 안에서 나오려 난리를 쳐 기르는 일보다 사오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하셨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어머니의 부탁으로 가끔 냇가에서 풀을 베어다 던져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인가 어스름 깃드는 저녁쯤 돼지가 주둥이로 가로막을 들추고 우리를 뛰쳐나와 넓은 뽕나무 밭으로 도망을 가고 말아, 온 가족이 간신히 돼지를 몰아넣었던 일도 있었다. 정작 궁금하여 새끼돼지를 다 키우면 어떻게 하나 여쭈니 동네에 큰 일이 있으면 내놓고 가끔 장사가 와서 키운 돼지를 사간다는 것이다. 그 때만해도 아버지 월급이 적고 자식들은 많으니 돼지를 팔아 추석에 우리들 때때옷을 사주시는 게 재미라 하셨다.

어머니가 언제까지 오늘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실까? 어머니 일생에 다시는 돼지우리 주변에 가실 날도 없을 것이다.

이제 혼자 둘 수 없는 어머니의 노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웃에서 남의 얘기처럼 흘려듣던 치매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아흔 셋 고령이어서 그러려니 우리 맘도 비워야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최후는 흙으로 돌아가기 전 흔들리는 다리를 또 한 번 건너야함을 누가 알았겠는가?

제천에서 며칠 어머니를 모셔보니 여동생들도 상태의 심각성을 보았고 모두 무거운 침묵가운데 여섯째 여동생이 조용히 말을 꺼낸다.

“엄마가 나랑 살고 싶대요. 자식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고 그리고 전서방이 제일 편해서 좋다고 하셔요.”

실은 여동생은 늘 그리던 산이 보이는 곳에 새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계획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와 경로당이 있는 아파트를 사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것이다.

하늘이 내린 축복일까. 어머니의 늦복일까.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어 여섯째 딸을 태어나게 해 주신 하늘 가신 아버지도 기뻐하시겠지. 간신히 긴장이 풀리고 꿈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이 총총하다.

어머니가 키운 새끼돼지는 모두 떠나고 여섯째 딸이 어머니의 황금돼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니 누구도 생각지 않은 일이었다.

“오라버님이나 언니들이나 네가 힘들지 않게 함께 도울 테니 힘 내거라. 고 맙다. 착한 내 동생”

방에 가보니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채 모로 누워 주무시고 계시다.

새벽이면 일찍 잠이 깨실까? 어머니의 기억은 점차 흔들릴 것이다. 여동생이 곁에서 개밥바라기별이 되어 어머니를 보살핀다고 한다. 나도 어머니의 별이 되었으면! 나는 여동생 그 빛나는 새벽별을 언제까지나 사랑할 일이다.

 

 

박 종 순 /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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