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갔다.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매표소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 바로 볼 수 있는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긴 생머리 여직원이 생긋 웃으며 좌석을 고르라고 했다. 맨 뒷줄 가운데 좌석을 찍었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더듬더듬 내 좌석을 찾아 갔다. 옆 좌석은 비어있었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돌려놓고 옆 좌석에 놓았다. 광고가 나오고 난 아무생각 없이 눈을 스크린에 던진 채, 팝콘을 씹다가 콜라를 빨다가를 반복했다.

전화기의 불빛이 반짝였다. 그녀로부터 카톡이 왔다. 날씨가 춥다고. 감기는 안걸렸냐고. 청주도 몹시 춥지만 그냥저냥 지낸다고 간단히 답을 한다. 그녀가 어디냐고 묻는다. 영화관이라고 하자 “혼자?”라고 톡을 보내왔다. 나는 짧게 답했다. “응!” “혼자 무슨 재미로 가?” “난 나만의 세계가 있잖아 아주 독특한. 혼자 영화 보는게 좋아~ ㅋㅋ” 잘 지내라는 톡을 넣고 폰을 덮었다.

‘샌안드레아스’라는 영화였다. 지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그 와중에 잃어버렸던 가족과 재회를 했다. 여러 가지 위기를 맞으며, 해체 될 뻔한 가족이 다시 결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미국 영화답게 영화 마지막에 성조기를 휘날리며 국가를 광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영화가 재미있었다.

어둠이 녹아내린 거리를 지나 집으로 왔다. 쇼팽의 야상곡을 크게 틀었다. 야상곡을 귀에 넘치도록 담으며 커피를 들고 어둠이 깔린 창가로 갔다. 애잔한 선율이 어둠에 섞여 가슴을 쿡쿡 찌른다. 나에게 지진이나 화재 등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친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떠올릴까?

며칠 전 인천에서 본 그녀의 얼굴이 어두운 창문 위로 가득했다. 그녀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집을 줄여가는 것이다. 곱게 자란 그녀에게는 청천 벽력같은 재난이리라. 세간살이를 가져가라는 전화가 왔었다. “아까운 가구들이야. 언니가 쓰면 내 맘이 덜 서운할 것 같아.” 가져온다한들 이미 집에 세간들이 있기에 딱히 필요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버리는 것도 다 돈이라며 가져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인천으로 향했다. 그녀가 이것저것을 다 내주었다. 그렇게 내주고 어찌 살지 걱정이 되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정말 안 쓸 것 같은 것만 줘!”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는 살림살이를 안할듯한 기세로 세간살이를 트럭 가득 실어 놓았다.

그녀와 나는 밥을 먹으러 소래포구로 갔다. 그녀의 차를 탔다. 작은 차로 바뀌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작은 차도 괜찮다며 웃었다. 아우디, 벤츠, 도요타 다 타봤지만 기름 값 적게 나오는 차가 최고란다. 설핏 아픔이 묻어났다. 회를 먹고 그 녀의 집으로 올라갔다. 미리 준비해 온 봉투를 그녀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양치 컵에 넣었다. 그녀는 청주에 내려가면서 마시라며 음료수를 사서 차에 실어주었다. “잘 살아.” 라는 말을 남기고 시동을 걸었다. 고속도로를 접어들며 그녀에게 문자를 했다. “화장실 컵 속에 봉투 놓고 왔다. 많지는 않지만 이사비용에 보태라.”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다시 문자가 왔다. “잘 쓸게! 눈물 날 것 같아” 문자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 같아 얼른 핸드폰을 뒤집었다.

저녁노을이 백미러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백미러에 써 있다. 노을이 가깝게 다가온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인천이 자꾸만 멀어진다. 내 하나뿐인 동생.

 

김 나 비 / 시인,원봉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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