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자 멀리 안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동 댐을 따라 도산서원으로 가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천광운영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원 건너편 낙동강변 백사장에 솟은 시사단(試士壇)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 안개가 희뿌옇게 드리웠다.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시사단의 모습은 경외감까지 들게 한다.

도산서당은 온돌방 하나, 마루 하나, 그리고 부엌이 달린 집이다. 더 클 필요도 없지만, 더 작아서는 곤란한 최적의 크기다. 그 모습은 단정한 선비의 풍모 그대로다.

도산서당에서 퇴계 이황은 타계하기까지 10년간 머물렀다. 온돌방과 마루, 부엌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세 칸짜리 집에서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모름지기 ‘건축의 품격은 기둥의 치장이나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주인의 인품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실감케 한다.

퇴계의 삶과 학문, 조선시대 정신사 속에서 도산서당의 건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이황이 도산서당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61세(1561년)가 되었을 때였다.

세 칸 중에 방은 서쪽에 두고 마루는 동쪽에 두었다. 방은 완락재(玩樂齋)라 하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하였는데, 둘 다 주자의 글에서 취한 이름이라한다.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잠을 자는 장수의 공간이 완락재이다. 바닥은 온돌로 난방을 하고, 벽에는 책이나 문방용품을 놓을 선반을 꾸몄다. 특히 온돌은 장수의 공간을 만드는 한 방법이었다. 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낮은 천장을 한 따듯한 온돌 바닥은 고요히 집중하여 책을 읽고 공부하기에 알맞았다. 암서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다.

한 칸에 불과한 암서헌으로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비좁았을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본채의 지붕 아래 덧댄 처마 익첨(翼尖)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익첨은 도산서당을 절우사에 가까이 다가들게 지어서 사람이 손을 뻗으면 자연과 접할 수 있게 했으니 그 혜안에 머리를 숙이게 한다.

암서헌 마루에 앉아 수림 사이로 안동호를 바라보았다. 호수의 물소리 건너편으로 시사단이 호수를 압도하듯 높이 솟아 있었다.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 들여 친화적이고 수수하다. 세 칸의 집으로 만족한 데에서 선생의 건축적 멋과 절제의 미를 느낀다.
더욱이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단지 건물만 세운 게 아니라 집 곁에 연못을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는 뜻으로 정우당(淨友塘)이라 이름 짓고 연꽃을 심었다. 샘을 파고 몽천(蒙泉)이라 하는가하면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 등 꽃나무를 심어 화단을 조성하고 절우사(節友社)라 불렀다. 경내의 조경요소를 통해서도 선비정신을 스스로 고양시키고자 한 흔적이 묻어난다. 퇴계의 시대에 집과 원림(苑林)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퇴계는 사물의 이름 짓기도 즐기며 의미를 부여했다. 계곡 입구라는 뜻으로 곡구암, 멀리 동쪽 푸른 언덕은 동취병, 그 뒷산은 부용병, 단지 이름을 짓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노래하며 사계절의 변화에 맞춘 시를 지었다. 이렇게 도산서당은 3칸의 작은 집이 아니고 뒷산과 앞내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을 건축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공간속에서 퇴계는 성리학자로 시인으로 건축가로 자신의 학문을 키우고 영혼을 살찌웠다.

강당인 전교당(典敎堂)은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대강당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서쪽의 한 칸만 통칸으로 온돌방을 만들고 나머지 공간은 마루로 꾸며져 있다.

마침 전교당에서는 학생들이 예복을 입고 정좌하여 강론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들과의 한 때가 연상되어 숙연한 마음으로발걸음을 멈추어본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퇴계 이황선생의 도산서당을 찾아간 것은 건축을 전공한 나에게 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는 어떤 집에서 일생을 살고 가는 것일까? 사람이 사는 집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 영향을 준다. 나아가 후손에게까지 그 사람의 따듯한 영혼을 전해줄 것이다. 영혼의 그릇인 제각각의 집은 마땅한 터에 자연과 더불어 지어질 때 사람들의 영원한 벗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정 관 영 /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