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 강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살아있는 그 무엇의 춤과 같기 때문이다. 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면서도 더 넓은 곳을 향하여 꿈을 안고 외로움마저 안고 흐르기에 바라볼 때마다 그의 곁을 떠나기 쉽지 않다.

크고 작은 강중에서도 이름마저 고운 금강을 좋아한지 오래다.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긴 금강은 전북 장수 신무산(神舞山)에서 발원하여 무주·금산·영동·옥천·공주·부여 등 굽이굽이 여러 고을을 흘러 서해 군산항 쪽으로 흘러가기에 어디를 가더라도 금강줄기를 살피며 애타게 바라본 적이 많았다.

30여 년 전 유월 30년을 기다려온 한 남자와 약혼을 하고 말았다. 무슨 연유인지 도담삼봉으로 기념여행을 하는데 강변에 줄지어 선 미루나무가 이제 곧 강물에 실리어 보낼 청춘이 늘 그리울 것이라고, 진초록 잎사귀들을 바람결에 흔들어 주던 추억을 매일 안고 살듯이. 어느덧 결혼 33주년을 맞아 늘 고대하던 금강에 가자하니 그 남자도 그러자한다. 그리운 금강길 따라 걷다 부여의 백마강에 이르러 일엽편주라도 탈 수 있다면 ...... 갓김치를 넣어 김밥을 싸고 둥글리던 과일을 챙겨 청주를 떠난다. 샛강을 지나면서 곳곳에 금강이라는 표지판을 만날 때마다 맘이 설렌다. 공주에 이르니 드넓은 금강변이 펼쳐지고 강물이 은빛 옷을 차려입고 평화로이 흐르고 있다. 드디어 강 위로 놓인 긴 다리를 건너 금강 허리를 건너는데 꿈이 아닐까 가슴이 벅차오른다. 공주에서 부여 낙화암까지 이어지는 금강 강변길은 일명 백제큰길이라 하여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금강일대에 산재한 백제문화 유적을 정비보호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건설교통부에서 2002년 완공한 길이라 한다.

고대왕국 백제가 한때 중국과 일본에까지 진출한 막강한 제국이었지만 말기에는 신라에 밀리면서 공주로 후퇴했다가 다시 부여까지 남하한 것을 금강은 몸으로 지켜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젠 수력발전을 겸한 봉황을 모티브로 하여 아름다운 공주보가 제일 먼저 우릴 반긴다. 공주보를 건너가 반대편에서 금강을 바라보니 한 눈 가득 그리던 강물이 금강 하류의 평온한 자태를 드러낸다. 새 네 마리가 나란히 앉아 사색에 잠겨 있어 무언가하니 짝궁이 가마우지가 아닐까 한다. 다시 강변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곰나루와 낙화암을 잇는 길의 멋은 마치 무인지경 같은 정적과 고만고만한 작은 산과 좁은 들, 드물게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이 가장 백제다운 운치를 지니고 있음이다. 정녕 나지막한 산들 사이로 강물이 한없이 평화롭게 흐르니, 적요하면서도 정다워 발길은 멎고, 나도 강물되어 따라 흐르고 있다. 강변 가까이 내려가 본다. 억새가 하얀 손을 흔든다. 모여 있던 수면 오리들이 선두를 따라 피라미드 모양으로 강물위로 나선다. 먼 하늘에서 내려보내온 반짝이는 햇볕을 등에 업고 금강의 꽃이 된다.

어느덧 부여에 이르러 강폭은 넓어지고 부소산성이 눈앞에 선다. 구드래 나루터로 가야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탈 수 있단다. 멀리 서해바다 쪽으로 노을이 붉다. 착한 청년들과 최소 승선가능 7인을 조합하여 마지막 떠나는 조그만 배에 올랐다. 강물은 소리 없이 물결지고 낙화암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이젠 꿈이 아니다. 신무산을 떠나 예까지 흘러온 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 백마강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을 만하다.

나당연합군에 패하여 백제의 문을 닫고 당나라로 끌려가야했던 의자(義慈)왕을 위로하며 배에서 내린다. 군산항 주변 서쪽 하늘 노을이 강 언덕까지 내려와 있다. 어둠이 오더라도 금강을 따라 그곳까지 가고 싶은데...... 새해에는 바다에 이르는 금강물결을 가까이서 따듯이 배웅해주고 싶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 땐 지금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1300여 년 전 백제의 강물은 흘러갔다. 2018 우리들 각자의 매일도 강물과 흘러갔다. 강은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바다에 이르고, 또 밤낮없이 파도를 넘는다. 강은 생명이고 사랑이다. 12월 금강물결은 너와 나 가슴속에 하나의 진주알 되어 빛나고 싶다. 바다와 먼 충북이라서 더 그리운 강이었을까?

 

박 종 순  /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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