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곡은 악곡 형식의 하나이다. 리듬, 화성, 박자 등을 변형시킬 동안 분위기가 바뀌고 그로써 주제 표현이 다양해진다. 희귀한 발상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변주곡은 독일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요한 파헬빌의 캐논 변주곡이다. 쇼팽의 플롯 변주곡과 와이만의 은파도 있다.

특별히 내 삶의 변주곡을 대입하고 싶은 거라면 와이만의 은파이다. 제시부에서는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가는 듯 혹은 꽃이파리와 산새들 날갯죽지를 보는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곡절 많은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서는 것처럼 극렬해진다. 냇물이 모여들 때도 소용돌이는 있었다. 변주곡이 삶의 단면을 노래하는 것 같은 배경이다.

분주했던 선율이 가라앉으면 후반부이다. 장마철에는 폭우에 급류에 개울이 뒤집어지고 물속의 돌까지 보이게 깨끗해지듯, 은파의 후반부도 격했던 전개부 때문에 훨씬 맑고 또렷하다. 보통 행진곡이면 행진곡 왈츠면 왈츠 등 한 가지 뉘앙스인데 변주곡 은파는 파도가 몰아치듯 했다가 끝내는 맑고 잔잔해지면서 고유의 특징을 드러낸다.

하기야 강물은 처음부터 그렇게 흘렀다. 따스한 봄날, 골짜기 물을 보면 날아가는 산새와 꽃잎이 비쳤다. 그러던 것이 강으로 접어들고 나룻배가 떠가면 좀 더 고풍스럽다. 재깔재깔 흐르는 냇물이 철부지 느낌이라면 장마철에 흙탕물이 되는 강물은 우여곡절 삶이다. 은파 역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만 봐도 1악장에서는 차분하다. 덤불 속의 백합화처럼 소금쟁이가 물을 쪼듯 상큼했던 게 파도치는 형세로 달라진다. 산더미같은 너울이 휩쓸고 피아니스트의 손도 취한 듯 내달린다.

강기슭을 뒤집는 물결처럼 건반 이 끝에서 저쪽까지 단번에 휘몰아치면서 열 개의 손마디가 겹쳐 보인다. 노래라고 하면 장송곡과 세레나데가 있고 그 외에 행진곡 춤곡 등 많으나 모두가 망라된 변주곡은 희비애락의 분수령을 오간다. 찬가는 물론 비가도 될 수 있는 변주곡 인생 또한 조율 방식에 따라 바뀐다. 음악이라 해도 윤슬처럼 잔잔했다가 별안간 달라진다. 인생의 변주곡도 악보는 하나였으되 느낌은 제각각이다.

변주곡은 일명 바리에이션이라고 부른다. 오리지널 원 바탕에 뭔가를 첨부하고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특히 발레에서 아다지오와, 변화라는 뜻의 바리에이션과 마지막을 뜻하는 코다(cod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고조되는 분위기가 새삼스럽다. 처음 고요하고 스산했던 분위기를 정리나 하듯 어느 순간 조용히 막을 내리는 변주곡 은파 그대로다.

인생도 그 분위기라는 것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지. 날씨도 한동안 맑으면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인생 또한 바람 불고 눈보라에 하루 이틀 아니고 힘들지만 탁월한 삶의 음악가는 그런 속에서도 역량을 발휘한다. 힘들수록 꿋꿋이 견디는 모습은 소망이다. 은파에서도 그 부분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게 빠르다. 넘보기 힘든 경지다.

인생을 변주곡으로 볼 때 최고 주자를 꼽는다면 나로서는 핼렌 켈러가 으뜸이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3중 불구자가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고백을 한다. 살 동안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하면 매일 매일 행복했다는 고백이야말로 최고의 변주곡이다. 청각장애와 시각장애에 말도 할 수 없는 불행까지 겹쳤다. 그런데도 불행한 날이 없었다는 비결이 궁금하다.

‘사흘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그녀의 저서를 보았다. 첫날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다음 날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씩씩한 모습과 영화 한 편을 보고 마지막에는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다는 고백이다. 누가 봐도 그렇게 살 수 있는 배경은 아니었는데 느낌이 묘하다. 변주곡도 제시부에서는 고요했으나 헬렌 켈러의 전 악장은 물결치는 강처럼 암울했다.

설리번 선생님이 손바닥에 글씨를 써 줄 때부터 꿈을 가진 것일까.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운 게 있다. 변주곡의 주자는 흐릴 때도 구름 속 태양을 본다. 헬렌 켈러 또한 절망 속에서도 남이 모르는 꿈을 새겼다. 귀는 들리지 않았으나 느낌으로 감지했다. 멀쩡히 잘 살면서도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뭔가를.

변주곡은 잔물결처럼 들리다가도 어느 순간 판이하게 바뀐다. 악상이라 해도 한 가지로 충분한데 다양한 주제가 돋보인다. 뛰어난 삶의 연주자도 리듬을 타면서 운명을 극복한다. 악상과 장조가 바뀌면서 더욱 신선한 변주곡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불행을 날마다 행복했노라는 기적으로 만든다. 우여곡절 인생도 변주곡이라면 한결 희망적이다.

오래 전 은파를 연습했을 때의 기억 또한 새롭다. 멜로디가 좋아서 시작은 했으나 무지하게 빠른 4악장 아르페지오는 아득히 어려웠다. 연습을 할 때마다 폭풍이 몰아치듯 하는 빠르기에 주눅이 들곤 했다. 그나마 손을 뗀 지 오래고 보니 남은 악장도 거반 잊어 버렸다. 전공을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으나 나머지는 그런대로 친 것을 보면 연습 부족이다. 가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마디에서 미세한 차이로 어긋나는 피아니스트를 보면 노력 또한 전공만치나 중요한 것을 알겠다.

은파는 제목 그대로 은빛 파도와 감미로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서정적 테마곡이다. 5개의 변주곡이 진행되는데 그것을 2악장씩 서주부와 전개부로 하고 끝 부분을 후반부로 설정했다. 마지막 변주는 행진곡처럼 경쾌한 리듬을 타고 종결부에 이른다. 우리 삶의 변주곡 또한 처음부터 작곡되었을 게다. 각자의 멜로디와 선율에 따라 부르고 연주할 수 있다면 힘들수록 인생의 변주곡을 생각해야겠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태어나면서부터 울어대는 것 또한 다분히 음악적이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는 또 자기 인생 캠퍼스에서 각자의 삶을 터득한다. 어쨌든 삶에 대해서는 저마다 이력을 쌓은 터였기에, 나름 의지와 인생철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삶의 철학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의미가 없다. 내가 은파를 좀 더 연습했더라면 어려운 4악장을 웬만치 마스터했을 거라고 아쉬워하듯 그렇게. 더불어 까다롭기는 해도 그 부분이야말로 가장 감동적이었다. 그게 곧 아슬아슬한 파도타기 때문이라면 더욱 잊지 못할 일이다.

인생도 한 가지 주제로 나갈 때는 지루할 수 있다. 변주곡의 특징은 곧 다양한 이미지였으나 고유의 악상은 살려야 무리가 없다. 은파 역시 갈수록 격한 느낌이어도 전체적으로는 투명한 음색이다. 변주곡 인생도 꿈은 이어져야겠지. 헬렌 켈러가 밝게 살았다고는 해도 가끔은 힘들었을 텐데 변함없이 꿋꿋한 것은 우리 알고 있는 대로다. 현재로서는 절망이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보면 소원대로 바뀐다. 차분히 들리다가도 중간 중간 격하게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변주곡처럼 인생 또한 사연으로 얼룩질 때가 아름답다.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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