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계절 가을이 되면 남달리 생사(生死)를 떠올리게 된다. 한여름에 그토록 푸르던 나뭇잎들이 낙엽 되어 뿌리로 돌아가듯 홀연히 떠나신 분의 사랑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뜨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왠지 죽음을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각자의 생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가 아무리 역경을 만난다 해도 그 역경을 헤치고 최선을 다하면 인생은 아름다운것이라고 몸소 가르쳐준 분이 있다. 자신의 딸처럼 사위를 사랑해주신 장모님이다. 자식들 다 키우고 여유가 생기면 효도를 하려 했는가. 이미 하늘 가신 장모님을 떠올리면 저린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장모님의 23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온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멀리 출타했다가 달려온 동서, 이천에서 막내 처제도 왔다.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하니 가슴 뿌듯하다. 나름대로 정성껏 추도예배를 준비하는 손길이 더욱 정겹고 고와보이는 것은, 그분께서 뿌린 사랑이 지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족한 자신이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말씀으로 추도예배를 인도했다. 장모께서 평생을 올곧게 사시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했듯이 감사는 최고의 미덕이다.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또다시 받을 길을 닦아놓는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감사함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던가. 감사는 웃음을 만들고, 웃음은 감사를 만든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장미를 보고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지만 어떤 이는 가시 중에도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이렇듯 감사의 생활은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는 놀라운 촉매제 역할을 한다. 성경에도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듯이 놀라운 축복의 삶이 깃들게 될 것이다.

추도예배를 마친 후 가족들과 그동안의 정담을 나누느라 밤이 깊었다. 처남은 농사를 지었다며 형제들에게 쌀 한 짝씩을 나누어 주었다. 막내처제는 여비라며 흰 봉투를 건네준다. 이모두가 정성어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가 아닌가. 서로를 생각하는 훈훈한 모습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그분이 뿌리신 사랑의 씨앗이다.

처가에 가는 날엔 영락없이 마중 나와 먼발치서 기다려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수육을 감칠맛 나게 준비하여 내놓으셨다. 그 뿐인가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난 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성경을 봉독하는 모습들하며 그 분의 일상이 눈에 밟힌다.

명절을 맞아 솜씨 좋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치마저고리를 입고 아내는 친구들과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는 얘기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이웃 어른들은 아내를 앞뒤로 돌려세우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엄마 바느질 솜씨 최고라고 칭찬을 많이 했단다.

지금도 달려가면 넉넉한 품에 안길 것 같고 전화를 드리면 포근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장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마저 아련하다.

살아계실 때 왜 이토록 그리움만큼 잘 해드리지 못했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계절 따라 자신을 몽땅 주고도 아쉬워한다. 헌신적인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에 자식들은 저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더 먼저 우리들 곁을 떠난 장인어른의 인자하신 모습도 다시 뵐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통한으로 남는다.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장모님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식들이 서로 아끼고 도우며 이 세상을 정답게 살아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요즘 백세 건강을 맞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름다운 삶을 살기위한 것이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남의 일처럼 터부시되던 죽음학(學) 강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말해주어야 할까. ‘엄마는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네 가슴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단다.’

장모님이 내 마음에 살아계시듯 죽음은 곧 감사함과 통한다. 어찌 보면 장모님은 늙지 않는 청춘이었나 보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매사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 주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뿌리 깊은 버팀목으로 비바람도 견디어 내신 우리들의 어머니!

장모님 추도예배를 드리며 죽음은 누구에게나 삶의 연속으로 피어나 어느 날 얻는 최후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복된 선물이 되려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하겠다.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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