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언제나 설렘을 안고 있다. 그것이 기대 이상의 울림이나 따듯함을 전해준 것이라면 백두산 천지를 마주한 그 이상이다. 한국 전후 문단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청주 출신의 신동문 시인을 만나 뵌 것이 그러하다. 시인은 문의면 산덕리에서 태어나셨고 그런 연유인지 제6회 신동문문학제가 청주시 상당구청 공연장에서 엄숙히 열리기에 다른 일 미루고 참석하였다,

가을이 깊어가며 새로 지어진 구청건물이 노을 속에 아름답게 자리했고 시인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전과 달리 고무적인 것은 ‘신동문문학제추진위원회’가 출범되어 고문에 이어 자문위원들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고문 여섯 분 중에는 이승우 전 시장님이 초청되어 반가움에 큰 박수를 했다. 내가 초임 교사로 제천시에 근무할 때 시장을 지내신 분인데 거의 30여년 만에 뵙다니 시인을 다시 만난 듯 감격이었다.

가장 감동을 불러온 것은 시인의 철학과 회고담을 들려준 충북문인협회장을 지낸 송주헌 님의 차례였다. 시인이 ‘창작과 비평’ 필화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고 절필 선언 이후 단양으로 내려와 임야를 개간해 포도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당시 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한 송주헌 님이 단양 쪽 출장을 가면 찾아뵙고 격의 없이 나눈 이야기와 기이한 추억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시인의 철학이 공연장 가득 울림으로 나약한 우리들을 조용히 흔들어댔다. 그저 자연을 음유하며 서정시나 쓰고마는 것이 아니라 그는 4.19에 맞서 시로써 응수하고,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실천하는 시인의 면모를 지녔다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학으로 침술을 배워 가난한 농민과 이웃들에게 봉사하여 꺼져가는 생명도 여러 번 살려낼 정도이니 ‘신바이쳐’로 명명됨에 고개가 숙여진다.

93년 가을 담도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며 노동의 삶을 소중히 한 시인은 과연 천재적인 시 감각에 그치지 않고 나라와 어려운 국민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베풀고 간 역동적 삶이었기에, 우리 각자는 자신을 반성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지를 저마다 꺼내보는 귀한 문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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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한 것이 언제인데.

실존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40세에 발표한 ‘내 노동으로’ 시의 끝부분이다. 노동의 즐거움과 치열한 생의 가치를 천착한 마음에 뭉클해온다. 이승우 님이 단양군수 재직 시에도 시인은 군청에 자주 들렀으며 함께 바둑을 즐기기도 여러 번인데 우리나이로 아흔 둘! 아직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된다.

시인의 본래 이름은 건호(建浩)! 동문이란 이름은 시인이 폐결핵으로 충북도립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니 죽은 사람들은 모두 동쪽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필명을 동문으로 지었다 한다. 시구문(屍口門)을 필명으로 삼다니 모두가 꺼리는 죽음까지 완성한 시인임에 신비롭다.

각막과 장기를 기증하고 남한강 단양 수양개 앞 강물에 한 줌의 재로 뿌려진 시인은 결국 죽음까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온전히 바친 것이다. 생각을 깨트려 시를 쓰고, 당신 몸을 부수어 사람을 사랑한 따듯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비할 바 없는 빛나는 보석이다. 전국에 80여개가 넘는 문학관이 있는데 우리 청주에는 아직 없다. 이제 힘 모아 뜻 모아 신동문문학관이 그가 태어난 이 곳 청주에 세워지기길 소망해 보는 것은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그날 공연장을 나오면서 내 마음에는 늙지 않는 한 청년이 살고 있다. 노동과 자연과 약한 생명을 마침내 죽음까지도 완벽하게 사랑한 사람! 신 동문 그가 그립다. 남한강이여 흘러넘치지 말라. 그 영혼 영원히 우리 곁에 흐르도록.

 

박 종 순 /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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