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가 감쪽같이 가을 속으로 사라졌다. 벌서 두 시간째 영이를 찾아 산속을 들길을 논길을 신작로를 헤매고 다닌다.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에 영이가 없어진 것이다. 주말에 텃밭에 올 때 마다 영이를 데리고 왔었다. 밥을 챙겨줄 사람도 마땅치 않았거니와 시골에 오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팔딱팔딱 뛰며 현관 앞에서 낑낑거리는 영이를 차마 두고 올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안에서만 키우던 터라 문을 열어놔도 좀처럼 나가지 않았었다. 영이가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온 집안의 문을 다 열어둔 채 잠이든 것이다.

그런데 연기처럼 사라졌다. 처음에는 근처에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뒤꼍과 집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을 올라가며 영이를 찾았다. 없었다. 불안했다. 옆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 전쯤에 윗마을 쪽으로 갔단다. 윗마을 쪽으로 영이를 부르며 걸었다. 두리번거리며 윗마을 가는 개울가와 논밭도 살폈다.

십이 년이다. 영이와 함께 한 것이. 영이를 처음 봤을 때 영이는 이가 기형적으로 나서 입도 다물지 못하고 혀를 빼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렸을 때 함께 놀던 빨간 혀를 가진 곰 인형 같았다. 귀도 기형이어서 한쪽이 일그러져 있었다. 게다가 젖꼭지의 수도 왼쪽과 오른쪽이 달랐다. 우리 집에 온 후로는 등에 혹이 자라기 시작했다. 혹 때문에 눕는 것도 불편해 하고 혹이 여기저기 쓸려서 진물도 났다. 그래서 제거수술도 한차례 했던 영이다. 잘 먹지도 않아서 인지 십이 년을 살았는데도 몸무게가 2키로가 채 안 나갔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고 애잔했다.

흰 눈이 창가에 흩날리던 어느 겨울 날, 동생이 일주일만 맡아달라며 내게 가져온 강아지였다. 컵 강아지라며 크지 않는 종류라고 했다. 남자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라 했다.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보기가 마음 아팠는지 내게 맡기고 간 지 어느 덧 십이 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영이가 그 애처로운 영이가 사라진 것이다. 윗마을을 다 뒤졌다. 보이지 않았다. 윗마을 사람들에게 영이를 보면 연락해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내려왔다.

저녁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작은 것이 혹시 개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풀숲을 잘못 들어 그 울창한 풀 속에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산길을 잘못 들어 그 작은 걸음으로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 들짐승에게 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여린 것이 얼마나 힘들고 막막할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안되겠다 싶어 이장님 집으로 달려갔다. 마당을 들어섰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현관 앞 계단에 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이장님 계세요?” 한참을 소리쳐 부르자 방 안쪽에서 희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조금만 기다려유~!” 이장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서 반가운 미소를 던지며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유~ 어쩐 일이유~?” 나는 안녕하시냐는 인사도 잊은 채 대뜸 말 한다. “방송 좀 해 주세요. 우리 개가 없어졌어요. 작아요. 1.9키로에요. 요크셔테리아에요. 십이 년을 키운거라 내 자식이나 똑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고 근육이 실룩거린다. 이장 아저씨는 알겠다며 방송을 해 준다. “돌아올거유~ 오이랑 호박 좀 주고 싶은데 정신이 없어 보여서 원~” “다음에 가져갈게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다시 마을을 뒤지며 영이를 불러댔다. 어느새 어둑어둑한 저녁이 마을로 소리 없이 내려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 혼잣말을 하며 길에 서성이고 있는 나를 남편이 소리 없이 안아줬다.

어둠이 밀려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언덕에 뭔가 있었다. 어둠속에서 검은 봉지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이였다. 난 뛰어가 영이를 안았다. 영이는 어디에 갔다 온 건지 온몸이 젖은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젖은 영이를 따듯한 물로 씻겨주었다. 그리고 가을바람이 선선하다는 핑계로 황토방에 불을 지폈다. 영이가 따듯한 방에서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니 안도감에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 들었다.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는 영이를 두고 가끔은 귀찮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영이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절절하게 느낀 시간이었다. 같이 하는 날 까지 세심하게 보살피리라. 조용히 영이 옆에 몸을 눕힌다.

 

김 희 숙 / 수필가,원봉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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