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 울적에 해먹에서
쓰르라미 울적에 해먹에서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8.08.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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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르라미 우는 초막에서 희주가 낮잠을 자고 있다. 애기들은 잘 때가 예쁘다더니 잠자리 한 마리 쥐고 입을 달싹이는 모습이 천사 같다. 서까래를 질러 매단 해먹과 잠든 아기와 시원한 솔바람의 앙상블. 볕 쏟아지는 잔디밭에서 꼬물꼬물 잠투정이나 하듯 움직일 때마다 알맞추 일렁이는 흔들이 그물 침대에서 호사나 부리듯 싱그러웠던 해먹 이야기……

 

오래 전, 동화 ‘백조왕자’에서 본 환상의 바구니가 떠오른다. 마술에 걸려 백조가 된 열 한명의 왕자와 엘리자 공주. 해만 뜨면 백조가 되는 오빠들이 동생을 태우고 다니기 위해서 만든 게 해먹 같은 바구니다. 하지만 해가 지면 사람으로 돌아오는 탓에 바닷가 아니면 숲 속에 내려가 하룻밤 묵어야 했다. 결국 며칠 동안 풀줄기를 뜯어 모은 뒤 탄탄하게 짠 그물 침대 하늘 바구니. 보통 두 개의 기둥에 달려 있던 해먹을 생각하면 동떨어진 기분이었으나 훨씬 자유롭게 날 수 있으니 그래서 더욱 설레었는지.
맨 처음 그물 바구니를 타고 가던 날 공주는 환상적인 정경을 보았다. 첫새벽 눈을 뜨자마자 다가오던 구름 속의 커다란 궁궐. 그물 바구니기 대리석 기둥에 닿을락말락할 때마다 손을 내밀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잠깐 실망했으나 그 다음 반짝이는 해님 사이로 떠 가는 커다란 돛단배 한 척. 해는 이미 높다랗게 떠서 백조가 된 오빠들이 바구니 끝자락을 물고 날아가는 중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신비스러운 정경에 어쩔 줄을 몰랐다. 연달아 겹쳐오는 풍경에 반해 있다가 그물 한켠을 보니 문득 빨갛게 잘 익은 딸기 한 송이.
무심코 한 입 깨무는 동시에 날개처럼 드리워진 구름 한자락도 보았다. 눈앞을 스치는 가지가지 풍경에 빠져 있다 보면 바람결에 흩어지곤 했다. 구름에 뒤덮인 하늘 바다를 고향의 바닷가로 착각했던 것. 꽈리처럼 혹은 초원의 양떼처럼 수없이 바뀌던 꿈속나라의 환상은 구름이 만들어 낸 신기루였다. 착각인 줄 알고도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던 공주와 귀엽고 예쁜 희주가 번차례 스쳐간다. 하늘에서의 그물 바구니야말로 흔한 해먹과는 달리 낮에도 허공을 떠다녔다는 생각이.

거실로 들어오니 방금 전의 환상이 수수로운 마음에 엇갈려 지나간다. 좀 더 자라 희주가 그 동화를 읽게 된다면 해먹에서 잠들던 기억은 까마득 잊은 채 동화 속 공주처럼 구름나라의 신비에 똑같이 눈을 반짝일 거라는 생각이. 혹여 읽지 않는다 해도 지금 해먹에서 잠들던 기억 자체가 하늘 구름 떠가는 바닷가 풍경이었다는 생각이. 구태여 동화가 아니어도 구름에 뒤덮인 하늘 바다와 수평선 멀리 진짜 바닷가는 아무리 봐도 비슷해 보였으므로.
높은 하늘에서 해먹도 아닌 풀 바구니에 실려 가는 것 또한 위험해 보여도 공주는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들떠 있었지. 단지 동화에서 본 것을 그렇게 비약하는 건 무리였으나 그보다 신비롭게 하늘 높이 날아가는 해먹이었다. 성글기는 해도 풀줄기는 가로줄 씨실이 되고 바람은 날줄이 되어 탄탄히 지탱해줄 것 같다. 그 위에 11명의 오빠들 백조가 물고 가면 바람결에 견고해지던 모종의 비밀 도구. 돌풍을 만나 우왕좌왕할 때도 무사했다. 해가 지면 금방 사람이 되는 까닭에 어쩌다 해거름에는 내려앉을 곳을 찾아 동동거렸는데 그럴 때도 찢어지지 않고 멀쩡했던 희귀한 바구니다.

열대지방에서 해먹은 일종의 침구류였다. 더위는 물론 뱀과 독충의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게 그 기원이고 뒤미처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나 거슬러 가면 천 년 전부터 해먹에서 잠을 잔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족이 있다. 뛰어난 건축술로 수많은 피라미드를 세웠다는 인디언 부족. 나무껍질과 섬유질로 짠 해먹은 독충을 피하는 도구였으되 천문학까지 발달했다니 별을 관측할 때도 안성맞춤 좋았을 테지. 나무에 매달면 해먹이 되고 드문드문 연결할 때는 밀림 숲을 오가는 구름다리로 바뀐다. 어쩌다 바람이 불 때는 또 푸른 범선처럼 일렁일 테니 해먹에서의 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별이 반짝이고 달빛 실자락 걸릴 때는 은빛으로 흘러가는 쪽배다. 풀줄기로 엮은 탓에 흔들리기는 해도 멀미는 나지 않을 특별한 침대. 귀 기울이면 풀벌레 소리와 또박또박 베껴 적는 밤의 요정도 있고 첫새벽 동이 틀 때는 동녘 하늘로부터 드리워지던 여명의 신비. 아침이면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실바람 소리와 새소리에 잠이 깨곤 했을 정경이 아로새긴 듯 예쁘다. 최신형 스탠드가 설치된 것도 아니고 스프링 탄력도 없지만 공중에 껑충 올라가 설치된 해먹이야말로 꿈나라로 이어진 구름다리였기에.
우리 살 동안에도 해먹 같은 공간은 필요하고 아울러 그런 식이라면 모든 게 수월할 것 같다. 힘들 때도 어둠 속의 별이 더 빛나는 것을 생각해야겠지. 소망이 아름다운 것은 절망 속에 깃드는 과정 때문이다. 밤 깊어 어둠이 두꺼워질수록 별은 더 빛나듯 절망이 깊어갈수록 희망 또한 점점 더 곱게 살구어진다. 힘든 중에도 해먹을 꿈꾸다 보면 무더운 여름 또한 조금은 상쾌해지듯 그렇게. 곤한 때마다 자신을 누이고 별처럼 빛나는 추억과 꿈을 바라보며 활력을 찾게 될 경우 그보다 신선한 완충지대는 또 없을 것이므로.
그리 예쁘기는 해도 더러는 벌레도 먹을 테지. 우리 모두의 걱정 또한 덜어내기 힘들어도 해먹에 눕는 순간만큼은 높은 하늘의 구름처럼 훌훌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얼마 후 다시 걱정스러운 일이 생긴다 해도 구름 또한 어차피 계속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바람에 곧장 흩어지듯 우리들 근심 또한 끝없이 이어질지언정 조금씩 날려 버리고 잠깐 동안이나마 홀가분한 기분이 된다면 해먹에서의 느낌 또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공중에서의 휴식이라 약간은 위험할 수 있으나 상쾌한 기분을 생각하면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처럼.
결국 마야인의 해먹이든 거기서 전래된 여타 해먹이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했으나 밖에서만 그리 착각일 뿐 드물게 시원한 공간이다. 해먹이 그렇듯 독충과 습기를 피하기 위한 거라면 우리 삶의 해먹도 어려움 속에서 모두를 지켜준다. 푸른 숲 나뭇가지 달린 해먹은 누가 봐도 예쁘고 아름답지만 겨울이라면 해먹에서의 잠은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 삶의 해먹 또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아니라면 한겨울 해먹처럼 이렇다 할 의미는 없다. 아울러 해먹 위에도 폭풍은 지나갈 테지. 어쩌면 더 심하게 불어올 수 있고 혹 그까지는 아니어도 급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당황할지언정 푸른 숲 골짜기 내음을 즐기자니 그만한 어려움은 참을 수 있어야겠다.
삶의 터널에 걸쳐진 해먹 또한 어긋나는 꿈과 현실 때문에 기우뚱하는 게 일이었으나 그럴 때도 딱 해먹만큼 기분 좋고 해먹만큼 가벼웠으면 좋겠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도 해먹 하나로 견디는 것처럼 힘든 삶을 지탱하게 될 뭔가는 있을 테니까. 숲속 골짜기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단 만큼 끈적이는 곳을 좋아하는 독충은 얼씬도 못하는 것처럼 우리 삶의 해먹 또한 고귀한 이상에 매 둘 경우 그 무엇도 범접치 못할 것이다. 그렇듯 최고 아름다운 휴식처로 바뀌면서 드물게 청정한 삶이 될 거라는 다짐이 초막에 걸려 있단 해먹만치나 풋풋하다.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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