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는 우리문화와 조상의 숨결이 깃든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이다.
고향사투리를 들으면 스르르 긴장이 빗장을 풀고 가슴이 문을 연다. 스스럼없는 죽마고우의 정을 느끼게 한다. 연륜이 더해가며 친구가 그립고 그 속엔 구수한 고향사투리가 숨어 있다.
군대에서 훈련병으로 복무할 때 도보훈련으로 행군을 할 때 일이다. 마침 빨간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치마를 살랑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행군대열에서 이를 본 경상도 사나이가 “저노무 가스나 지긴다 지기.”하고 말문을 열자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사나이가 물 만난 고기처럼 질세라 하고 한마디씩 던진다.
“저 가시나 나뿌닥 반반하네.”, “저 기집애 괜차녀.”, “자이 곱닥 허다이.” 이런 말을 아가씨가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총총히 사라졌고 경상도 사투리인 ‘지긴다’는 말이 지금도 생생해 실소를 자아낸다.
기분이 나빠도 ‘지긴다’고 하고 기분이 좋아도 ‘지긴다’고 한다. 마음에 와 닿는 감동이 있어도 ‘지긴다’로 통하니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다른 지방의 사투리도 자유스러우면서 흉내 낼 수 없는 구수한 맛을 느낀다.
사투리는 그 지역 사람들의 기질뿐만 아니라 지형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무뚝뚝하고 투박할 수밖에 없는 것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기운을 받은 데다 경북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내려온 유교적 언어 습관까지 합쳐진 탓이 아닌가, 추측된다.
언어의 중요한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요즘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표준어의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문학작품이나 드라마의 다양한 소재는 사투리의 소통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가 지방을 방문할 때 지방의 특색을 살려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한다면 더 정감이 가지 않을까.
표준말에 갇혀있는 언어적 상상력의 한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자유분방함이 사투리의 묘미가 아닌가싶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 고향친구와 진한 사투리로 한바탕 뒹굴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처럼 사투리에는 아늑한 고향길이 열려 있다.
광주가 고향인 대학동기의 사투리는 고소한 숭늉 맛이요, 투박한 질그릇의 멋이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쏘아대는 광주사투리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충청도사투리는 온화하면서 말꼬리는 길게 빼고 느리다. 늘 여유가 있는 말투이면서 편안하고 뭔가 모르게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준다.
우리말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함을 느낀다. 우리가 사투리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고대 상형문자 산스크리터에서, 우리말로 기록된 말을 해독한 결과 전라도 사투리와 똑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히말리아산 남쪽 인도 쪽으로는 전라도 말과 같고, 히말리아산 티벳 쪽으로는 경상도 사투리와 같다고 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세종대왕께서는 12,000자의 한자를 우리의 음운에 맞게 백성들이 널리 쓰이는 말에 토를 달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신숙주가 집현전 학자들과 그 음운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산스크리터어에 우리말로 기록된 말과 일치한다고 한다. 산스크리터어는 1만 년이 넘은 우리말의 기록이며 글씨이다. 이렇게 언어를 통한 역사의 비밀도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꾸르족이다. 꾸르꾸르, 고려, 구리, 고구려 등으로 우리가 Korea라는 까닭이요. 태양족, 환국, 한국, 조선이라는 까닭이다. 우리말에서 역사를 찾고, 조상의 숨결을 찾는다. 사투리는 각 지방의 오랜 역사, 풍습, 전통이 녹아든 조상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우리의 귀한 문화가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충청도의 사라져가는 고유한 토속어를 발굴하여 유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하겠다.
몇 해 전 충북예술제를 열면서 충북문인협회에서는 충청도사투리경연대회를 주최하여 충청도의 정감어린 사투리 잔치를 열고, 사투리의 참 멋에 도민과 함께 잠겨본 적이 있다. 차제에 점차 사라져가는 사투리를 발굴하여 언어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통한 우리의 뿌리를 살펴보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정관영 / 공학박사, 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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