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어제 밤엔 잘 주무셨는지요? 별님이 내려와 흙이불 토닥여 주기를 바랐는데 여름저녁비가 내려 쫌 걱정되었어요. 이제 겨우 한 달 전인가? 형님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 앞에 돌아 왔을 때 앞산이 우르르 무너지며 하늘이 멈춘 듯 아무 할 말이 없었지요. 조카가 영정사진을 앞세우고 한 걸음 내딛을 때 꿈이 아닌가 싶었지만 늘 곁에서 웃으시던 형님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ㅊ대 병원 암병동에서 죽음을 이겨보려, 어서 나아 집으로 가시길 고대하며 바치던 기도가 이제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어머니가 곧 운명하실 것 같다’는 조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제 형님은 이미 눈을 감고 조용히 거친 숨만 쉬시는 한 마리 새 같았답니다.
‘형님 사랑해요 아무 걱정 마셔요. 천사가 와서 안고 갈 거예요’ 떨리는 제 목소리! 그래도 서너 달은 더 이겨내실 줄 알았는데 형님의 차가와지는 이마에 손을 얹고 가늘어가는 숨소리에 제 손발짓은 실은 허공이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왜 죽음과는 춤을 추지 못하고 한 가닥 실처럼 약해지는지요? 오래 전 하늘 가신 친가 아버님 영면 시에도 말 한마디 내주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미울 정도로 안타까웠어요. 사람의 생과 사는 사람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합니다.
형님의 차가와진 몸을 성당 영안실 긴 서랍에 모셔두고 집으로 오는 날 형님이 벌써 별님이 되어 나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저 멀리 별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저는 그 때 웬일인지 형님이 제 품에 안기신 듯 제 가슴을 따듯이 안아보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형님!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천당에 이르셨는지요? 3년 전에 먼저 가신 그립던 아주버님도 만나셨는지, 하얀 아카시아 꽃 타고 떠나신 어머님도 만나셨는지 그렇다면 저의 안부도 전해주셔요. 말썽피던 손녀딸 성당에서 결혼하여 아가를 가져 10월에 난다는 등 말입니다. 시누이지만 어머님처럼 돌봐주시고 감싸주신 형님! 신부, 수녀님을 위하시고, 성경을 필사하고, 한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나 묵주기도를 바치는 형님을 저는 은근 존경해 왔습니다. 단지 지나친 절약으로 지금껏 속옷을 꿰매어 다시입고 남들 헐렁히 담은 봉투에 쓰레기를 얹어 담아 버렸다는 사실이 가슴 저립니다. 지금도 그런 여인과 어머니가 있을까요? 어느 먼 별나라에서 온 소공녀 같은 시누님! 형님과 제가 만나 지낸 30여년은 별의 시간이었을까요? 한 번도 서럽지 않았습니다. 형님 병환이 위중하기 전 마지막을 예감하였는지 무심천 벚꽃나무 길을 걸어가며 들려준 이야기
“죽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렇게 두렵고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살기 어렵다 하며 ‘죽고 싶다’ 하는 사람 많은데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것에 비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눈만 뜨면 볼 수 있고 철 따라 꽃 이 피어 예쁘고 나무와 산이 저들 보라 서있고.....죽어서 천당 가려 하지 말 고 지금 이곳이 바로 천국임을 나는 왜 그걸 몰랐는지. 참 후회스럽네. 매일 즐겁게들 살어.”
정말 그렇지요? 조카들을 포함한 생의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새 용기를 줄 것이라 믿어 봅니다. 아침에 눈을 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약속이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가를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느 하늘 아래서 나를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비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처럼 곱고 깊은 설렘인 것을 말입니다
제 곁에 늘 함께 걸으시며 웃고 계신 형님! 정말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형님에게 보내는 마지막편지가 될지라도 주일마다 양손 고이 모아 형님대신 성체를 받아 모실 생각입니다.
형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7월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보고픈 사람 찾아 마음껏 다니십시오. 형님과 자주 가던 상당산성 마을 논 연못에 하얀 연꽃이 가득 피어 바람과 속삭이고 있습니다. 어느 노시인도 말했어요.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형님 장송자 율리안나와의 만남과 이별! 생에서 사까지 모든 순간이 한 번뿐인 것을 연꽃과 바람은 알고 있었을까요?

 

박종순 / 시인, 전 복대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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