쌕쌕거리며 자는 모습에 이제야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연휴에 딸 노릇을 하러 친정에 갔다.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엄마의 말에 돼지 막으로 내려갔다. 한 달도 안 된 다섯 마리의 아기 돼지가 올망졸망 어미 돼지 곁에 단추처럼 붙어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단추 하나가 이상했다. 움직임도 없이 구석에 떨어진 채 웅크리고 있었다. 돼지 막의 시멘트 바닥과 철 울타리 사이에 끼었다고 했다.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발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다른 돼지들보다 체구도 작았다. 절름거리며 어미젖 근처에 가려고는 하나 다른 돼지들에 치여서 젖 한번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엄마에게 얘기를 하자 엄마는 오늘 내일 새로 죽을 거 같다고 했다. 가슴을 바늘로 쿡쿡 찔리는 듯 했다.

옷에 떨어질 듯 말 듯 달려있는 단추처럼, 세상에서 떨어질 듯 말 듯 간신히 생명줄을 잡고 있는 돼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절름거리는 단추를 안아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헌 수건을 스티로폼 위에 깔고 그 위에 단추를 눕혀 거실 한 켠으로 들였다. 단추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오들거렸다. 엄마에게 젖병이 있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숟가락을 찾아왔다. 그리고 밥물을 끓여 단추의 입어 떠 넣었다. 단추는 끽~끽 소리만 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몸을 숙이고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앓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가슴을 졸였다.

자정이 되었다. 정체가 풀려간다는 뉴스를 들으며 짐을 꾸렸다. 엄마에게 돼지를 부탁했다. 그러나 팔순이 넘은 엄마는 당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요즘은 걷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게 아픈 돼지를 부탁하는 것은 나의 이기심일 수 있었다. 톨게이트 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 가득 흔들리는 단추가 맴을 돌았다. 우리 집은 공동 주택이다. 더군다나 얼마 전 앞집과 그 아래층이 층간 소음으로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까지 오고 갔다. 결국 한 집이 이사를 가면서 싸움이 종결되었다. 게다가 우리 집엔 이미 개가 두 마리 살고 있었다. 단추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무리일 듯 했다. 그러나 살리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된다와 안 된다의 깃발을 반복해서 꺼내들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라.’ 라는 누군가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톨게이트를 이 삼 분 앞두고 핸들을 다시 친정 쪽으로 돌렸다. 바들바들 떨며 앓고 있는 단추를 차에 태웠다. 데리고 가지 말자고,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울 거냐고, 아랫집에서 쫒아 올 거라고, 말리는 가족에게 목숨만 살려서 다시 시골에 데려다 주면 된다고 설득했다.

두 시간을 달려 집으로 왔다.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냈다. 우유를 그릇에 부어주었다. 먹지 않았다. 다음날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연휴라 쉬는 병원이 많았다. 세 군데를 전화 해 보았으나 받지 않았다. 네 번째 동물병원에 전화를 하자 전화를 받았다. 젖병을 파냐고 묻자 애완동물용품가게에 전화해 보라했다. 애완용품 가게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렸다. 한곳에 다행히 있었다. 쏜살같이 달려갔다. 돼지 젖병을 달라고 하자 점원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이 젖꼭지가 작은 고양이용 젖병을 샀다. 돼지용 분유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강아지용 분유를 샀다. 처음엔 젖꼭지를 빨 줄 모르는 돼지의 입을 벌리고 분유를 똑똑 떨어뜨려 주었다. 그렇게 수 십 차례를 반복 한 후에 드디어 돼지가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타서 단추의 입에 물렸다. 개들도 신기한 듯 단추를 기웃거렸다.

이제는 집에 있는 개보다도 더 자라서 신나게 말썽을 부려 놓는 말썽쟁이 돼지가 되었다. 퇴근해서 집의 문을 열면 냄새가 먼저 나를 덮친다. 아들은 말한다. “엄마 새로운 냄새가 나타났어요. 세 마리 동물 냄새가 섞여서 뭔가 야릇해요”라고. 뒤를 이어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난지도를 연상하게 한다. 신문은 갈기갈기 찢겨져 거실에서 춤을 추고, 매트는 단추가 물어뜯어서 파란 살점을 조각조각 흘리고 있고, 욕실 앞에 있어야 할 발판은 부엌에 가 있고, 테이블보는 입으로 물어 재낀 양 떨어져서 거실에 뒹군다. 이젠 다 살렸으니 그만 시골에 데려다 주는 건 어떠냐고 남편은 나를 볼 때마다 타령을 했다. 나는 20키로가 넘어서 도저히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데려다 주겠다고 빈말을 했다. 남편은 건전지가 다 소진되어 멈춰버린 체중계에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20키로가 넘으면 시골에 데려다 주겠다는 그 약속은 꼭 지키라고.

걱정이다. 20키로가 넘지 말아야 하는데. 당연히 단추는 20키로를 훌쩍 넘길 것이고 나는 또 다른 갈등과 고민에 빠지리라.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일만 생각하리라. 그 때는 단추를 곁에 둘 또 다른 이유가 생기리라. 아니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 내리라. 단추를 위해서, 아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내일은 내일을 태양이 뜨듯이 그 날은 그 날의 이유가 둥실 떠오르리라.

김 희 숙 / 수필가, 원봉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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