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기 '붉은 점화'

유월의 황홀한 불길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지구촌을 내달리고 있다. 70년 만에 꽃피운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국내적으로는 6.13 지방선거의 열풍으로 매스컴과 사람들이 달리고 달려왔다. 뒤이어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되어 녹색 그라운드가 춤추고 더위도 물리쳐 버린다. 월드컵 출전의 영광을 얻은 나라는 경기에 앞서 국가를 합창하며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승리의 각오를 다짐하는 장면은 국가 간 스포츠의 위력을 바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꼭 보던 뉴스 시청을 하고 났는데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의 1라운드 마지막, 폴란드와 세네갈의 경기가 열린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쇼팽의 조국 폴란드에 가본 적 있고, 레게머리에 조각몸매로도 유명한 세네갈 감독 ‘알리우 시세’를 화면으로라도 볼 수 있기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시세감독은 32개국 사령탑 중 유일한 흑인으로 최연소 감독이라니 대단한 남자 아닌가?

선수들 입장부터 너무나 대조적인데 그것이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폴란드 선수들은 하나같이 큰 키에 하얀 피부 빛깔로 백장미를 보는 형세이고, 이에 반해 세네갈 선수들 피부는 매우 검지만 갈고 닦은 몸매에 흑장미의 매력을 품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한편의 명화를 보는 느낌에 선수들의 힘찬 다리사이로 축구공을 따라 나의 눈과 몸도 달렸다.

처음에는 세계 8위인 폴란드의 승리를 기대하게 되었는데 점차 세네갈을 향해 사랑을 쏘았다. 선수들 모두 체력과 패스연결도 뛰어나 그 자체가 늠름히 달리는 사자 같았다. 드디어 세네갈이 먼저 한골을 넣어 어퍼컷 세리머리를 하는 ‘알리우 시세’감독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그라운드 밖에 서 있으나 카리스마를 발하며 승리의 자신감이 선수들에게 순간순간 전달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표팀의 주장으로 뛰었던 시세는 16년 후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두 번째 월드컵 본선을 이끌고 왔으니 명불허전 ‘검은 표범’이라 불릴 만하다. 신의 축복인가 2:1로 폴란드를 따돌리고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 유일하게 첫 승을 거두어 내가 유월에 지켜본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한판 승부였다.

24명의 건각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예술에 흠뻑 취해 전후반 백여 분을 새로운 감각으로 지켜본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멋진 젊은이들의 나라 세네갈 여행을 꿈꿔보며, 잠자리에서도 떠오르는 명화 한 점을 생각한다. 능금 꽃에서 붉은 점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김환기! 그가 1972년에 붉은 색 물감으로 엿새 만에 완성한 ‘붉은 점화’라는 작품이다. 한국현대미술 경매에서 최고 판매가 85억 3000만원에 낙찰되었으니 꿈이 아닐까? 경매가도 대단하지만 화가의 무르익은 자연관과 예술관이 녹아든 역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그림을 접한 모든 이의 마음을 머물게 한다.
 
대형 캔버스에 무수히 찍어낸 점은 하늘의 별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거듭나는 세포 같기도 하니 볼수록 신비롭고 위대한 작품이다. 글자의 나열로 사색의 길에 이르는 문학의 숲에서 나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엑티브하면서도 정적인 또 다른 예술의 길 그 오묘한 갈래를 이 유월에 마주치게 된 것이다.

신혼 시절부터 여행을 떠나면 언제 챙겨왔는지 스케치북을 꺼내 내 모습과 주변의 고운 경치를 쉽게 그려내던 남편이 정년 후 얼마 간 방황하다가 유화의 길에 들어섰다. 미완성 작인데도 표구를 하여 온 집안에 펼쳐두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선물하여 나의 원성을 산 경우도 있었다. 2년 전부터 화실에 나가 더욱 정진하더니 제43회 충북미술대전에 60호 대작을 출품한다는 것이다. 그림 인구도 많아 기대하지 않았는데 처녀 출전에 입선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늦은 나이에 화가의 반열에 한 발 넣은 그 발걸음이 자연의 이치와 사랑까지 화폭에 담아 붓끝에서 시나브로 빛나길......

늘 그리운 꽃 중의 왕 모란꽃 피는 유월은 정녕 남자의 계절인가? 축구장을 누비는 젊은 남자 선수들, 예술위의 예술인 김환기 작가, 그리고 한 사람 나의 룸메이트 장 스테파노, 그들은 정녕 외길 문학의 숲을 벗어나 깊고 넓게 샘솟아 생의 환희를 이끄는 또 다른 예술의 길로 나를 데려갔다.

사람마다 몸과 영혼 속 어딘가에 예술의 뜨거운 뿔을 숨겨둔 창조주 그를 머리 숙여 흠숭하게 하는 새로운 유월이다. 남자의 계절은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박 종 순 / 전 복대초 교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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