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온 그녀
기차로 온 그녀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8.06.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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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온다고 한다. 저녁 여덟시 팔분 오근장역에 도착한단다. 아카시아 향기 하얗게 날리는 계절을 달려 그녀를 맞으러 갔다. 그녀를 기다리다 차창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새 하늘은 온몸에 달과 별을 달고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잘 살고 있는 거냐고, 괜찮은 거냐고 조곤조곤 묻는 것 같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나도 알 길이 없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데 톡하고 카톡이 날아든다. 그녀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핸드폰 화면으로 톡톡 튀어 오른다. 차를 열고 그녀를 맞으러 몇 걸음을 옮긴다. 역 쪽에서 뽀얀 그녀가 달빛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고 걸어오고 있다.

두 달 만이다. 하도 자주 통화를 해서 마치 어제 본 것 같다. 우아한 머리, 날씬한 허리, 상큼한 다리, 내 동공이 빠르게 위에서 아래로 훑다가 신발에서 멈추었다. 눈물방울 같은 큐빅이 바디라인에 달려 딸랑거리고 있는 신발! ‘어라~ 내 신발과 똑같네!’ 난 청주에 살고 그녀는 제천에 있는데, 똑같은 신발을 산 것이다.

그녀와 나는 칠년 전에 일 년을 같이 근무 했었다. 낯선 제천에서 갈대밭에 버려진 작은 새처럼 서걱이고 있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후 난 청주로 오고 그녀는 여전히 제천에 있지만 우리는 틈나는 대로 안부를 묻고, 방학이면 여행을 다녔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가 묻는다. “나 뭐 입어?” 옷장을 뒤적여 수면잠옷을 내주었다. 그녀도 나도 추위를 많이 타서 오월에도 두툼한 수면잠옷에 수면양말을 신어야 한다. “나 씻는다.”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며 목소리만 내게 던진다. “클렌징크림 어디 있어?” 나도 화장실 쪽을 보며 큰소리로 답한다. “없는데.” “폼 클렌징은?” “그런 거 안 키우는데.” 그녀가 좀 더 큰 소리로 묻는다. “그럼 뭐로 씻어?” 나도 큰 소리로 답한다. “세수 비누!” 씻고 나온 그녀가 이번엔 바디로션을 찾는다. 그런 거 없다고 하자 이번엔 아이크림을 찾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런 거 안 쓴다고 대답한다. “머리는 뭐 발라?” “언니 걍 거기 있는 영양크림 발라.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 바디크림 아이크림 헤어로션 영양크림 왜 그렇게 세분을 해? 그냥 난 영양크림 얼굴에 바르고 남으면 그거로 머리도 바르는데.”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헐~ 용하다. 그러고도 그 젊음을 유지한다는 게. 지금부터 관리해야해!” 그녀의 걱정 어린 눈빛에 그럴 생각이라고 건성으로 답하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침대위로 올라온 그녀와 나는 도란도란 새벽이 오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두드린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뜬다. 그녀가 누운 채 다리를 치켜들고 스트레칭을 한다. 이내 다리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시늉을 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머리와 발을 침대 면에 대고 목과 다리를 꺾으며 등과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이번엔 팔을 쭈~욱 뻗어 좌우로 흔든다. 김연아 엉덩이 만들기 란다.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스케이팅하듯 움직이는 폼이 제법 운동이 될 듯하다. 스트레칭을 마친 그녀가 물 한잔을 들이키더니 침대 밖으로 나와 또 온몸을 푼다.

그렇게 삼 십 여분 몸 풀기를 하는 그녀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 매일 그렇게 해? 힘들겠다.” 그녀가 몸을 움직이며 말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아픔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하는지. 그 아픈 시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혼자 철저하게 견뎌내야 하는 거야.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은 순간순간은 가족도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인거야. 난 아파봐서 알아. 그런 시간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너도 스스로 챙겨. 얼굴도 몸도 마음도 한방에 훅 간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겠노라고 대충 대답을 했다. 운동을 끝냈는지 그녀는 가방에서 한 아름 무엇인가를 꺼낸다. 건강 보조식품이다. “이건 식전에 먹어야해!” 그녀가 내게 내민다. 난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아침을 먹은 후 이번엔 비타민이라며 내게 껍질을 까서 건넨다. 난 또 받아먹는다. 한참 수다를 풀다 그녀는 공복에 먹어야 한다며 과일즙 내린 것을 준다. 아팠던 기억들을 되 뇌이며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그녀. 건강을 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그녀가 아픔으로 내게 번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그녀는 제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를 보내고 텅 빈 대합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아프지 말고 살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자. 오늘부터 나도 관리에 들어갈까!’ 그녀의 스트레칭을 하던 모습이, 건강식품을 챙겨먹던 모습이, 고운 피부에 관리하던 모습이 대합실 여기저기에 설핏설핏 스친다.

김 희 숙 / 수필가, 원봉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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