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초평저수지는 수심이 깊어 근접하기 어려운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하였다. 호수와 산을 끼고 길게 다듬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산마루의 농암정에서는 초평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 멋진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 길의 끝에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농다리가 있다. 오랜 풍상을 겪은 다리가 강이나 개울, 연못을 연결하며 자연과 어우러져있는 그대로의 수수함이 묻어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향기는 더 깊어질 것이다.

천년을 이어온 진천 농다리(籠橋)는 사시사철 고고한 자태로 반갑게 맞아 준다. 시시각각 풍경의 옷을 바꿔 입는다. 물안개 피어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매력인 농다리 주변의 고즈넉한 시골길의 풍경, 호수 곳곳에 드넓게 퍼져 있는 수초들의 신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풍광이 가득하다. 매번 찾아갈 때 마다 감회가 남달라 추억이 오롯하다.

금가루같이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거슬러 올라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흐르는 개울 세금천(洗金川) 옆을 걷는 것 또한 환상이다. 얼기설기 얽었다하여 농다리라고도 하고, 장마 때는 물이 다리위로 넘어간다고 수월교(水越橋)라고도 한다. 농다리는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작은 돌을 촘촘히 쌓아 만들었다. 또한 농 궤짝을 쌓아올리듯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다리라 하여 농교(籠橋)라고도 전해진다. 천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이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이기도 하다. 교각의 모양과 쌓는 방법이 특이하다.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하였고 폭과 두께가 위로 갈수록 물고기처럼 좁아지게 하여 물살의 영향을 덜 받게 한듯하다. 30~40센티미터 정도의 사력암질 돌을 이용하여 다리를 놓았음에도 유실되지 않고 천년의 세월을 견뎠다. 반복되는 장마에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생각하니 조상들의 기술력이 실로 놀랍다.

다리는 교석에 까맣게 내려앉은 이끼로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고 있다. 농다리 인근 굴티마을에는 150년이 넘은 흙집에 살며 90여 년 동안이나 농다리를 지켜보았다는 노파의 말이 눈물겹다. 장마가 지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홍수에 떠밀려 내려온 큰 나무 가지들을 치우며 관리했다고 한다. 다리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의 숨은 노력이 값지다.

농다리의 형상도 기이하다. 마치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튕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모습이다.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은 꼭 지네발처럼 보인다. 농다리 교각의 수는 28개로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한 것이다. 실로 심오한 동양철학을 엿볼 수 있어 옛 조상들의 멋과 지혜를 알 수 있다.

이렇듯 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기도 한다. 또한 마음과 마음의 연결통로이기도하다. 종교에서는 세속과 영원한 세상의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냇물에는 징검다리, 섶다리, 방축다리, 살래다리 등 보는 것만으로도 잊혀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그 다리들은 숱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조상들의 숨결과 정신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다.

문화유산은 흔히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가치와 예술, 그리고 기술이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 유산에는 그 시대의 미학과 과학이 어우러져 그 시대를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이끼 낀 성곽과 빛바랜 나무기둥, 실개천에 놓인 돌다리 등에는 버텨온 세월만큼 숱한 이야기와 선조들의 지혜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날 고도의 경제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며 옛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가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우리 기억 속에 사라져가는 옛 다리는 오래전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추억과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때마침 제18회 생거진천 농다리 축제가 25일부터 열리니 축제에 참여해 볼 일이다.

정 관 영 /  공학박사, 우석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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