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 쪽 지인이 며느리를 얻는다하여 결혼식에 남편과 딸내외를 데리고 가 보았다. 며느리를 들이는 시아버지는 싱글벙글 흐뭇함에 젖어있고 아들도 잘 생긴 모습에 신부는 베트남여인이라는데 한국인 못지않게 곱고 성품이 밝아 식장 분위기가 남달랐다. 가장 산뜻한 것은 주례사였는데 일생 행복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 사랑을 저축해가며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씀 끝부분에 시 한수를 낭독해주었는데 뜻밖에도 김남조 시인의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주례 분께 멋지다 인사전하고 사월의 봄빛을 안고 그 시인을 다시 그리워했다.

벌써 1년이 가까워오는 작년 5월 옥천에서 지용제가 열리는데 김시인이 나태주, 도종환 등 역대수상 시인들과 옥천에 온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그리로 달려갔다. 늘 심사만 하시고 후배 시인들을 격려해오던 김남조 시인이 제 29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시어 매우 뜻깊은 나들이가 마련된 것이다. 행사장엔 정말 그림처럼 보고싶던 시인들이 김남조 시인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다. 멀리 부산에서 온 강은교 시인을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시낭송과 좌담이 끝나고 시인에게 다가가 기념사진도 찍고 간단한 대화도 나누었다. 하늘색 내 옷이 ‘어여쁘다’하시며 은은히 웃으셨다. 세월나이 아흔을 넘긴 우리나라 최고령 시인어찌 그리 고우신가? 젊은 여인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온 몸에 지니고 있다. 단지 걷기가 불편한지 휠체어에 의지 우리내외가 이동을 조금씩 도와드리기도 했다. 수상작 ‘시계’의 한 구절 ‘사랑과 재물과 오래 사는 일’을 조금도 탐하지 않은 사람처럼 곱고 선하게 우리 곁에 함께 하셨기에 그 시인의 향기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후 시인이 자신의 18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을 열화당에서 출간했다는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다. 첫 만남 때 댁 주소를 알려 주어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지만 시인은 젊게 살아 있던 것이다. 평론가들은 “김남조 선생은 시를 통해 순교와 장수 둘 다를 이룬 분”이라고 했고, “이번에 출간된 시집을 보니 김남조 선생의 시가 아직도 강한 긴장과 탄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노시인의 사람과 사랑에 대한 구도자적 희원의 삶에 경외감을 표했다.

오지 않는 답장 대신 새 시집 ‘충만한 사랑’을 주문하여 품에 안아 보았다. 아이보리 순한 보드란 표지는 시인이 잡아준 손길처럼 따스했던 정감이 다시 살아난다.

김남조 시인과 동갑으로 아흔 둘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저만치 잡히지 않는 시처럼 혹시 치매에 접할까 늘 조심스러운데 어머니의 영혼은 맑고 곧으시다. 그 연세에 나의 할아버지인 시아버님 기일을 챙기고 있어 송구스러웠다.

멀리 떠나 있는 손녀들이 오면 함께 송어회 먹으러 가자는 걸 잊지 않으시고 언제 오느냐 전화기를 놓지 않으신다. 그 간절한 기다림에 바쁜 일 뒤로한 채 어머니를 모시고 어스름 저녁이지만 평창송어를 찾아 시동을 건다. 곧 밤이 오련만 두려움 없이 좋다고 하신다. 갖은 야채에 송어회를 얹고 참기름과 콩가루, 마늘, 초고추장을 고루 넣어 비빔회를 만들어 뒤적이며 맛있게도 드신다. 맛을 느끼시니 아직 건강하신 것이다. 얼마나 맛있는지 ‘사위도 먹게나’ 그 한마디 잊고 수저가 부산하다. 커피도 물을 부어 후루룩 마시고 만족한 표정이시다. ‘진작 모시고 올 걸’ 어머니가 사랑스럽고 내 어깨는 가볍다. 왠지 어머니가 나를 낳아 위대해 보이는 밤 9시! 순식간에 시 닮은 몇 줄 써내려간다.

날 이 땅에 떨군
단 한 사람 나의 어머니

아흔 둘 고개 넘은 주름진 얼굴
이젠 펴지지 않는 구부정한 허리춤
그 몸에서 내가 나왔다.

오늘 비로소
지상에 우뚝 선 피라미드 같은
어머니! 모든 것이 되다

저 거룩한 나의 껍데기
아직 성성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사람이 또 한사람을 낳았다
이 세상 하나뿐인 난
그 여인 어머니의 작품이라니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아흔 둘 고개에 올라선 시인과 어머니, 아니 지금 지상에 피어난 꽃들과 눕거나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월을 펼쳐 안아본다. 낭성에는 지금 벚꽃이 한창이다.

박 종 순 /  (전) 복대초 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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