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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피니언칼럼
냉이촌의 하루냉이가 어디 있어요?
함께하는 충북  |  chungbuk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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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17: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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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던 여자가 불쑥 그렇게 묻는다. 바구니를 들고 밭둑에 앉아 있는 걸 보니 캐는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살펴도 냉이가 눈에 띄질 않았나 보다. 나는 또“들어와 보세요. 아주 아주 많아요”라고 되받았다. 내 말을 듣더니 확인이나 하듯 밭둑에 올라서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는“정말이네. 아까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별일이군?”라고 갸웃거리며 저만치 돌아나간다. 봄이라 해도 나물을 캐기에는 여전히 추운 날씨라서 더 그랬을 법하다. 차림만 봐서는 냉이라곤 캐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여자. 하지만 나 역시 냉이를 캐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흙 묻는 걸 싫어했다. 그나마도 처음 캘 때는 어디 있는지를 몰랐다. 밭둑을 지나다가 눈에 띄면 캐려고 했을 뿐인데 냉이도 보호색을 띠느라고 거무튀튀하게 도사려 있는 줄 몰랐다. 남들은 잘도 캐는데 왜 보이지 않느냐고 밭둑을 건성건성 지나친 것이다. 한 식경쯤 지나자 별안간 짜증스럽고 홧김에 고랑을 파헤치다가 덤불 속에 돋아난 냉이를 보았다. 별안간 마음이 급해지고 부랴부랴 캐서 단숨에 한 바구니 채웠다. 어쩌면 그렇게 멀쩡히 속일 수 있느냐는 지청구가 절로 나왔다. ‘겨우내 그 짝이었을까’라고 하면서. 싹을 틔운다 해도 누군가 캐 갈 게 두려워 꽁꽁 숨었을 테니까.

눈에 띌까 봐 보호 차원에서 내숭을 떨었다면 저 살려는 본능이었다. 운명과 시련 또한 보호색을 띠고 있었는데 힘들다고만 불평했다. 냉이가 있는 줄, 그것도 천연스레 많은 줄 모르고 투덜거리던 그 때처럼. 우리도 어떤 일이 닥칠 때는 밭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망설인다. 나야 몇 번 캐면서 냉이의 거취를 알아낸 거지만 삶 역시 과감히 뛰어들 때라야 진주든 뭐든 얻게 되고 비로소 무릎을 친다. 운명의 밭에도 가지가지 보배가 숨어 있었으니까. 냉이를 캐러 나올 때마다 처음 몇 번은 깜빡 속곤 했으나 얼마 후 보니 다들‘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것처럼.

이쯤 되면 누구나“그랬어? 진즉 들어가 볼 걸 그랬지”라고 하겠지만 직접 캐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 약도 오르고 또 요행 찾아낸 것에 대해‘내 실력 어때’라고 일침을 놓는 것도 나름 묘리다. 운명이라는 녀석도 보호색만 둘렀을 뿐 별의별 진귀한 보석을 숨겨 놓았을 것이다. 그나마 얼핏 보고 속단하는 게 태반이지만 어찌 어찌 손에 쥐고 나면 냉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에 멀쩡한 속임수였다고 쾌재를 올릴 수 있겠다. 고랑고랑 숨어 있던 새침데기 꾀보 녀석들을 용케 찾아낸 통쾌함 같은 거였다.

게다가 그것은 또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나만의 영역으로 가꿀 수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겉으로만 보면서 착각하기 때문에 선뜻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삶의 보물찾기도 남들이 별반 가지 않는 그런 곳에서라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1차 들어온다 해도 애써 캔 냉이는 대부분 흙투성이에 검불 치레가 되기 때문에 다들 실망하게 마련이고 더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너무 지저분해서 나 역시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바로 그 특징이 마음만 먹으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요인이었거늘.

오죽해서 봄나물은 손 공으로 먹는다 할까 라고도 하지만 다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얼마 후 데쳐내고 본즉 놀라울 정도로 파랗게 살아나던 초록빛. 하도 지저분해서 데쳐도 칙칙할 줄 알았건만 거무스름한 미역 줄기가 끓는 물에 넣는 순간 파랗게 살아나듯 똑같다. 그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고 지나쳤는데 냉이는 직접 캔 거라서 이색적이었을까. 노지에서 자란 것은 데칠 때 얼마쯤은 숨이 죽는데 덤불을 비집고 나온 그들은 데쳐내도 푸르다. 추울 때마다 꽁꽁 새겨둔 의지가 끓는 물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데치는 건 가혹한 운명으로 볼 수 있고 그럴 때도 한결 더 푸르다면 지표는 벌써 나왔다. 내가 켄 것은 한갓 나물이었으나 바로 특별한 섭리를 인생에 적용하는 셈이다. 모처럼의 행복 같은 것도 요거야 싶을 때가 있지만 얼마나 산뜻하고 푸른지는 데쳐 봐야 안다. 검불에 티겁지에 어수선해도 훨씬 더 향긋하고 구수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팽개친다면 그보다 무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래 이따금 곱은 손을 불며 언 땅에서 캐기도 하는데 단순히 먹는 것 이전에 어떤 섭리가 느껴지고 옷깃이 절로 여미어진다.

운명의 밭 또한, 보약처럼 먹기 위해서라도 이른 봄 냉이처럼 힘든 속에서 캐는 게 더 푸짐할 수 있다. 냉이를 캐는 게 보물찾기라면 검불이 훨씬 많고 인생 또한 그 과정이라면 어려울 때가 오히려 전성기다. 냉이를 키운 봄도 보호색 취향이라 그 속에서 찾기란 더욱 힘들고 막상 또 캐 보면 티겁지에 검불 치레였으나, 보석도 울퉁불퉁 원석에 아주 조금 붙었다. 그나마 제련을 한 뒤 소량만 떼어낼 테니 거기서 끝나면 안 되는 거였다. 오리지널 진짜배기 玉도 가끔은 흙 치레가 되는 것처럼. 빛깔은 칙칙해도 본격적인 봄 냉이보다 훨씬 맛나듯 그렇게.

세상 중요한 것은 희귀성 때문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설령 잘 띈다 해도 대부분 그렇게 투박한 모습이라는 것. 눈에 잘 띄는 게 보기와는 달리 허름할 수도 있는 양면성 역시 드물고 귀한 중요성 때문에도 대단치 않은 듯 위장하는 속내와 맞물린다. 결론적으로 세상 귀한 게 눈에 잘 띈다면 누구든지 탐을 내고 끝내는 아무것도 남아나지 못할 테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달리 허술하게 보이는 속내야말로 소중한 것을 보존하는 방편이다.

냉이가 어디 있느냐고 묻던 여자가 다시금 스쳐간다. 나는 아주 많이 보이는데 뚝 떨어져 있으니 보일 리가 없지 하면서도 나 또한 저만치서 뭐가 있느냐고 타박한 게 불과 몇 해 전이다.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잡초 속 예쁜 꽃도 볼 수 없고 자갈밭 솟는 샘물도 마실 수 없으니 또한 공교롭다. 자세히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도 세상의 단면이다. ‘자세히 보니 어디 있기는커녕 너무 많아서 안절부절 못하겠거든?’라는 게 오늘의 최고 감동이었기에.

다만 한 해 뜯어 먹는 냉이도 노심초사할 때 보인다. 평생을 거는 삶인데, 인생 또한 행복이 되었든 소망이 되었든 수박 겉 핥기 식이어서는 얻을 게 없다. 소망이든 행복이든 곡절을 감내하고 채취하는 과정이라면 과감히 뛰어들 일이다. 오늘 냉이 한 줌 캘 동안도 온 밭의 검불을 치우고 분주를 떨어야 했던 것처럼. 더욱 그 한 줌 냉이는 일 년의 마중물로 최적의 건강을 도모해 주듯 운명의 뻘 밭에서 체득한 섭리와 가치관 역시 인생의 마중물로 충분하다. 더욱 그로써 훨씬 더 윤택한 삶이 될 거라는 섭리가 힘들게 뜯은 냉이보다 옹골차다.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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