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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灣만 여울에서 섬을 보다
하지灣만 여울에서 섬을 보다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8.03.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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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천 아래뜸에 노을이 진다. 지는 해가 “오늘은 끝났어”라고 하지만 이어서 별이 뜬다. 언젠가 불쑥 튀어나온 돌무지와 거기 휘돌아가는 물줄기를 보면서 불시에 이름 붙인 하지만(灣), 눈감으면 “힘들다고? 하지만 참아”혹은 “다 내려놓고 싶겠지? 하지만 희망을 가져”라는 속삭임이 소라껍데기 맴도는 물결처럼 아련하다.

이따금 지나가면서 스스로 이름붙인 하지만의 물소리를 듣는 그 느낌. 지는 해가 물을 끓이면 어렴풋 햇살에 고개 숙인 하루가 보였지. 무채색 갈대밭에 어우러진 이른 봄 물살의 축제, 얼음 녹은 물에 봄이 촉촉 젖곤 하더니 히야로비가 보이고 철새가 날아들 때는 그림 같다. 육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만灣이라면, 냇가의 지류까지 포함하는 건 무리였으나 나의 1마지노선도 그렇게 부르고 싶어지니 연유를 모르겠다. 크기야 어쨌든 남한강 어귀의 갈대섬도 그리 생겨난 것을.

마을 앞 개울에는 늪지가 많고 자갈밭도 널렸다. 불현듯 스쳐가는 개울가의 풍경. 내 삶의 아우트라인을 돌아가다 보면 찰싹이는 물소리가 예쁘다. 철철이 이름 모를 풀이 돋고 꽃도 피었다. 빛깔은 희미했으나 모래뻘은 풍경처럼 곱다.‘그 사람 순하지만 고집은 있어’라고 하듯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보는 게 하지만의 관례다. 거센 바람에도 그래야 먹장구름 흩어지고 그래야 방패연 높이 오른다며“하지만 괜찮아, 하지만 기다리는 거야”라는 비장의 최면술.

팔랑팔랑 이파리 날릴 때는 나뭇잎배다. 노를 젓거나 삿대를 잡은 것도 아닌데 미끄러지듯 나간다. 후미진 섬 기슭에 닿는 순간 또 작은 섬으로 태어난다. 우리 역시 삶의 여울을 돌아나간 물결이 돌아와 흐를 때도 반전을 꾀하면서 견딘다. 발이 젖고 옷을 적시고 넘어졌으나 하지만 공식을 대입하면서 풀어갈 동안 꿈이 자라고 소망이 둥지를 틀었다. 만灣이 부드럽고 단단한 지형의 경계에 생기듯 살 동안의 만도 우여곡절 힘들목에서 생기지만 삶의 대단원에서 하지만 인생은 살만한 거였다고 회상하게 된다면 찰싹 찰싹 물소리 예쁜 영토는 꿈의 공간이었다.

하지만은 쉼터다. 넓게는 수백 km나 되는 세계적인 만灣에 비할 수는 없으나 개울가에 드러난 풍경은 가히 목가적이다. 만은 물굽이를 나타내듯 강으로 가던 물이 잠깐 머물러 쉬곤 했었지. 힘들 때 중요한 건 하지만의 죔쇠고 삶의 보루 역할이다. 부화되지 못하고 무산된 꿈이 한 차례 빠져나갔다가 되돌아와서는 새삼스럽게 희망을 끄집어내는 곳. 들리는가? 힘들지만 보람찬 날들, 소망을 꿈꾸는 이가 모여드는 하지만, 어쨌거나 살아 있는 게 행복한 사람들의 구구절절 이야기……

만灣이 곧 바닷물이 육지에 밀려 와서 생긴 거라면, 아울러 거기 또 이따금 갈대밭이 생긴다면 꿈을 향해 이상을 좇아 헤매다가 돌아온 여울목 또한 나만의 아지트다. 내 삶의 방파제는 축축했지만 이끼는 푸르게 번져나갔다. 정적만 떠도는 하지만 기슭의 풍경이다. 늪에서도 꿈은 빛나고 푹푹 빠지는 습지에도 갈대가 핀다. 삶의 물결이 되돌아간 여울마다 하지만의 물소리가 정강이를 적신다. 후미진 모퉁이에서 꿈이나 꾸듯 찰박찰박 찰박찰박……

어쩌다 보면 거기 어렴풋 섬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나, 둘, 셋, 혹은 두 개도 같다. 하지만灣 여울에 불쑥 나타난 꿈이다. 펄쩍 뛰면 닿을 만치 가까워서 하나로도 보인다. ‘내게도島’라고 이름 붙였다. 섬이라니, 누가 봐도 억지였으나 내게도 섬이 있다는 소망을 생각하면 꿈이 보였다. 아무도 모른 채 나만 아는 섬이었어도 드문드문 떠가는 얼음장 속의 돌무더기는 작으나마 섬으로 충분하다. 큰물이 질 때마다 생기는 자갈밭 억새밭도 구색을 맞추면서 꽤나 그럴싸했던 기억.

어떤 섬은 제법 텃밭만하다. 놋대야만치, 크게는 함지박만한 곳도 있는데 갈대밭 물오리를 보면 낙동강의 철새 도래지 을숙도 같은 느낌이다. 섬을 지구의 소품이라면 개울가의 돌무지도 섬이라기에 손색이 없다. 장마에 개울이 뒤집어지고 조약돌이 구를 때는 모래알 반짝이는 바닷가 여전하다.

살다 보니 감정의 돌무지가 쌓였다. 처음 손바닥만했던 것이 커지면서 내 삶의 후미에 생긴 크고 작은 섬. 어렵고 힘들 때마다 거기서 나름 휴식을 취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섬이 크면 소망도 자랐던 것. 잎이 어우러지고 꽃이 필 때마다‘그래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가 뜬다. 내게도에 잇따라 생긴 또 다른 섬, ‘그래도島’이다. 세상 흔한 예쁘고 멋진 섬만은 못해도 희망이 샘솟는다. 힘들지만 그래도 꿈은 잃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냇가의 돌섬에 풀이 어울리고 갈대가 무성해지듯 섬을 생각하면 마음도 촉촉해진다. 물이 속도를 쟁이며 돌아갈 때마다 내리 태어나는 섬, 구름에 가려진다 해도 역경은 전성기다. 물도 돌아가는 게 좋다고 섬을 만들면서 철새들 보금자리로 바뀌었거늘. 기껏 풀밭인데 동산까지 잠기면 숨바꼭질이나 하듯 넘실거렸다. 가끔 보면 낚시꾼이 모여들고 그럭저럭 잡히는 성 싶다. 바람의 쟁기질에 물 이랑이 뜨면 구름도 빗물을 방목시킨다. 산새들까지 똥을 갈기며 물수제비를 뜬다. 소금쟁이가 개울을 쪼아대는 날은 머리털 허연 억새도 추억을 담근 채 흔들렸는데.

섬 사람들은 파도소리 듣고 잠든다지만 강 하나 없는 충청 내륙 지방의 개울가 섬은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제주도니 하와이 등보다 하얀 별 쏟아지는 집 앞의 작은 섬이 정겹다. 섬도 아닌 섬에서 풀 한 포기 꽃 한송이를 보며 환상에 젖는 행복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장마에 물이 들면 금방 떠내려가도 부화되지 못한 꿈 역시 많다. 냇가의 섬 또한 비가 오면 흙탕물이 되지만 꿈이 있으면 환상의 섬이 되고 “아무래도 틀렸어”라고 부정하면 절망의 섬이다. 대륙에서 삐져나온 게 섬이듯 희망 역시 절망의 반도에서 나온다. 개울가의 섬이 있는 한 내게도島 풍요로운 삶은 이어질 것이기에.

섬은 밤에도 나타났다. 언젠가 밤길을 가다가 초승달을 보고는 ‘아직도島’라고 명명했다. 달은 어디서든 보였으나, 어스름 달빛에 덤불과 억새가 드러날 때라야 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녹록하지 않은 삶의 바다에 은빛 꿈의 공간 아직도가 생겼다. 어느 날은 하늘 복판에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이 둥글고 고무신짝처럼 기름할 때도 있다. 섬에 가까운 건 반달과 보름달이되 서쪽하늘 초승달은 밤바다의 섬같이 아기자기했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새치름 반달 또는 보름달로 차오른다. 하늘에 점 찍어 둔 나만의 섬은 가능성과 의욕 때문에 훨씬 더 밝다.

우리 어려울 때도 꿈과 소망은 있다고 하는 것처럼. 달도 차면 기운다는 것은 조각달 역시 언젠가는 보름달로 바뀐다는 뜻. 귀 기울이면 “아직도 승산은 있어”라면서 내일을 꿈꾸는 아직도의 물소리. 반경을 돌아가면 구름 속에서 푸르러질 하늘이 보였지. 보름달은 이울어지고 초승달은 차오를 날만 남았다며 그렇게. 우리 잘 때도 세상은 돌아 새벽이 되듯 하지만에 늘어선 꿈의 열도, 내게도島 섬이 있고 그래도 꿈이 있다고 아직도島 아직도 최면을 걸면서 내일을 바라보는 삶은 아름답다. 개울가의 섬은 물론이고 힘들어서 하늘 볼 때는 아직도리고 이름 붙인 초승달까지 빛날 테니까.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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