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각 급 학교에서 졸업식을 거행하고 있다.

‘졸업’하면 설렘 속에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석별의 정을 떨칠 수 없어 흐느끼며 흘리던 눈물이 생각난다. 그 뿐인가. 교문 앞을 가득 채운 꽃들이 떠오른다. 헤어짐이 아프지만 다시 만남을 기약하기에 졸업은 시작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 아주 오래 전에 국민학교를 졸업했는데 그것은 늘 시들지 않는 추억 속에 있다. 집안 조카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어 우연한 기회에 졸업식장을 가보게 되었다. 코흘리개 1학년 손수건을 달고 입학하여 6년 2,100여일을 하루같이 다녔으니 초등학교 졸업은 메달로 친다면 금메달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식이 시작되기 전에 축하공연이 있었다.
 
3학년 동생들이 파랑, 분홍 캡 모자를 쓰고 기악합주를 했다. 지휘도 어린이가 했다. 멜로디언, 리코더,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 북 저마다 맡은 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은 귀엽고도 대견하다. 나도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선생님이 쳐주신 풍금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 뜻밖의 공연선물에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개회가 선언되고 드디어 졸업증서 수여식 차례가 되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천사처럼 나타난 여자 교장선생님이 먼저 단상으로 나왔다. 졸업식장이 환하고 아이들이 예쁘다며 소곤소곤 시선을 모았다. 한복치마는 홍시감색으로 고와 우아한 자태가 돋보인다.

초등학교의 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6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것은 수여하는 교장선생님이나 받는 학생에게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모두 숨죽여 지켜보는데 어떻게 연습을 하였는지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사람씩 의젓하게 단상으로 걸어 나온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뒤로 돌아서 지켜보는 재학생, 학부모, 내빈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졸업생의 태도와 표정은 당당하고 의젓함이 묻어난다.

장내에는 박수가 그치지 않는다. 가장 감동인 것은 교장선생님이 엄숙한 소리로 졸업장을 읽고 졸업생 전원에게 한 사람씩 증서를 수여하는 것이다. 자녀가 호명되어 나올 때 환호를 해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곧이어 상장과 장학금도 수여되었다. 이 학교에서는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교장, 교감 선생님도 장학금을 쾌척하여 졸업생 전원이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장 식사(式辭)는 졸업생에게 주는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덕담이자 가르침이다. 교장선생님이 나오자 사회자의 구령에 맞추어 ‘사랑합니다’라는 졸업생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 ‘thinking tree’를 연호하며 다함께 외치자고 주문하였다. 주제는 ‘나무 생각’이었다.

‘나무는 모진 비바람을 맞고 눈보라를 이겨내며 모두 말라 생명이 다할 것 같은 한여름 가뭄도 거뜬히 이겨낸다. 봄에는 어김없이 뾰족한 새싹을 내 놓습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햇빛과 바람을 받아 안고 여름에는 큰 잎을 달아 새들과 매미의 집이 되어 줍니다. 그러더니 가을에는 빨강 노랑 열매를 매달아 사람에게 건네줍니다.

나무는 말없는 성자입니다. 나는 졸업생 한사람 한 사람이 마치 나무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무의 참음과 슬기 그리고 기다림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지만 불평하기보다 사색의 자세로 주위와 어울립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있는 위대한 한 그루 나무인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지혜의 그늘을 드리워주고, 때로는 쓰러지는 나무를 붙잡고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은 초록 새싹을 단 ‘봄의 나무’라 할 것입니다. 늘 서서 자야하는 나무는 더 넓은 세상을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밤낮없이 교정을 지키겠습니다. 힘겨울 때 나무를 생각해 주십시오. 모진 비바람에서 슬기롭게 몸을 지켜내며 희망으로 초록 잎을 다십시오. 하늘은 어느 날 열매를 달아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난 가을 서울·수원으로 수학여행을 다니면서 친구사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미래의 어느 날 여러분을 가르쳐 주신 두 분 담임 선생님과 함께 친구 만남의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카를 포함한 졸업생들이 큰 박수로 화답하며 장내는 숙연하였다.

정작 깨달음을 얻은 것은 나였다. 내가 마치 ‘초록나무’로 다시 태어난 듯 소망이 가슴을 뛰게 한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한 그루 나무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조카를 포함한 저 학생들이 이 땅에 영원히 푸른 나무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였다. 교정 정원에 늠름한 자태로 드리운 반송나무도 따듯한 배웅을 잊지 않는다.

정 관 영 / 공학박사, 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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